동강 김우옹의 민본사상
Kim U - Ong’s Min - Bon Id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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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동강 김우옹의 민본사상을 살펴본 것이다. 그는 유교 정치사상에서 명분론과 민본론이 절대적 가치임을 인식하였다. 그러나 양자는 현실 정치에서 항상 충돌의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김우옹은 양자의 충돌 가능성을 군민일체론을 통해 해소하고자 하였다. 즉 군주와 민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의제화하고, 부모와 자식이 일체인 것처럼 군주와 민도 일체라는 것이다. 이 논리에서는 민에 대한 일방적인 지배나 또는 군주에 대한 반역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양자는 일체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군민일체론은 16세기 조선의 정치사상사에서 중요한 진전이었다. 그러나 김우옹이 활동했던 시대는 지배의 명분만이 강조되면서 민본정치는 실종된 상황이었다. 이에 그는 민본정치를 회복하기 위해 사공과 변통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민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주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민에게 피해를 주는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전까지만 해도 그는 변통해야 할 구체적인 제도에 대해 많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왜란을 겪으면서 그는 적극적으로 제도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그것은 국정 전반에 걸친 것이었지만, 특히 인사 제도와 군정의 개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김우옹은 어떤 개혁이라도 그것이 성공하려면 민심을 하나로 묶는 민본정치가 전제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Abstract
This article deals with Dong-Kang Kim U-Ong’s ‘Min-Bon’ ideology. He regarded ‘Myeong-Bun Ron’ and ‘Min-Bon Ron’ as the essence of the Confucian political ideas. The two values, however, tended to conflict with each other in real politics. Kim U-Ong tried to solve the problem thorough ‘Gun-Min-Il-Chae Ron,’ a theory that the monarch and the people are integrated into a single body. It assumes that the monarch and the people, just as the relationship between parents and their siblings, are unified into a single entity, thus allowing neither autocratic ruling over the people nor rebellion against the monarch. The development of this theory was a great progressive step in the history of political ideas of the sixteenth-century Chosun dynasty. During the time when Kim U-Ong was actively working, however, ‘Min-Bon’ politics had declined. That the people should be ruled by the monarch and the upper class was the prevailing political ideology. Recognizing serious problems in such political reality, Kim U-Ong called for ‘Sa-Gong’ and ‘Byeon-Tong,’ by which he believed the contemporary society could revive ‘Min-Bon’ politics. He urged that institutions damaging the life of the people be abolished or reformed, and instead, various administrative maneuvers be introduced for the benefits of the people. His voice for reform began to be loud after the Japanese invasion in the Im-Jin year. Although the reforms Kim U-Ong demanded were across the whole of political spheres, he paid a special attention to personnel administration and military system. The message he delivered to the contemporary society was that politics should be grounded upon ‘Min-Bon’ ideology, without which any reform would not be success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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