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斗燦의 『乘槎錄』에 나타난 韓中 知識人의 相互認識
崔斗灿的《乘槎录》中出现的韩中知识分子的相互认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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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崔斗燦(1779~1821)의 『槎錄』은 표류기 중에서는 가장 最近에 지어진 1818년 作品이다. 『乘槎錄』은 최두찬이 일행 50명과 함께한 16일간의 표류 체험과 中國 寧波에 漂着한 후 歸還에 이르는 4월 8일부터 10월 2일까지의 기록으로 構成되어 있다. 그는 강남의 풍경과 풍속을 그만의 시각으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흥미롭고 다양한 정보들이 많이 들어있어 韓中 兩國의 연구자들에게 유익한 자료를 제공한다. 崔溥가 지은 『漂海錄』에 匹敵할 만한 漂流 作品이라 할 수 있다. 예기치 않은 표류라는 상황을 통해 韓中 文人들은 깊은 交流를 갖게 된다. 여기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이러한 交流에는 최두찬 개인의 깊은 문학, 역사, 지리에 대한 박식함, 漢詩와 筆談을 나누는 데 능숙한 그의 文士的 素養이 큰 역할을 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韓中 文人들이 서로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觸發시켰다. 明 王朝가 붕괴된 지 오래된 19세기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淸朝에 대해서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던 그를 통해 淸朝를 보는 당시 조선 선비들의 시각도 아울러 짐작할 수 있다. 더불어 오랑캐의 臣民이 된 그들이 아직도 明의 遺風을 따르는 최두찬 일행에게 보여 주는 미묘한 기류도 확인할 수 있었다. 漂流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그저 흥미로운 체험담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예기치 않은 낯선 文化를 접했을 때, 어떠한 視覺으로 그것을 認識해야 하는지, 또, 그러한 이질적인 文化의 지식인들과 무엇을 소통하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단서를 제공해 주지는 않는지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Abstract
崔斗灿(1779~1821)的《乘槎录》于1818年完成,是漂流记中最晚期作品。《乘槎录》由崔斗灿一行50人漂流16日的体验和漂流至中国宁波后至归还的4月8日至10月2日的纪录构成。他站在自己的角度记录了江南的风景和风俗。其中包括了很多令人感兴趣的内容,为韩中两国的研究者提供了有利的资料。是可以与崔溥的著作《漂海录》相匹敌的漂流作品。 预想不到的漂流使韩中文人有机会进行深入交流。在这儿可以发现几点让人感兴趣的事实。首先,崔斗灿学识渊博,具备广博的地理历史知识,善于写汉诗、笔谈,这些修养在进行交流时起到了很重要的作用。以此为基础韩中文人互相触发了对对方的关心。 直至明王朝灭亡已久的19世纪初期他仍然否定清朝,由此可看出当时朝鲜儒生们的观点。并且还可以看出成为蛮夷臣民的人们与仍崇尚明朝的遗风崔斗灿之间的微妙的关系。 漂流对现在的我们有什么意义?只不过是一件趣谈。但我们也应深思,如预想不到地接触到陌生文化时,要以什么样的角度认识它呢?另外要与这些不同文化的知识分子沟通些什么内容,要学到些什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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