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용과 ‘實地’로서의 유리창-시장의 발견
Dae Yong Hong and Liulichang as the Silji(實地)-Discovery of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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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의 중국 여행 기록에 보이는 시장(市場)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특히 북경 유리창(琉璃廠)을 중심으로 시장의 공간적 기능과 그 공간 속에서 조선 연행사들의 자기 형성 과정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시장은 삶의 필요와 편의를 확보하여 인간의 삶을 보다 더 확대된 가능성 속에 존재하게 하는 장소이면서, 시장에서의 소비는 한정된 인간 생존 조건의 훼손으로 이어져 존재의 위기와 제약을 불러오기도 한다. 존재의 자유와 제약이라고 하는 시장의 장소성은 18세기에 중국을 여행했던 홍대용에게도 깊은 관심을 끌었다. 홍대용과 이후의 연행사들이 체험한 감각의 풍요로움과 미적 감수성의 온축은 유리창이라고 하는 시장의 발견과 동시적으로 일어났다. 시장과 거리와 상품은 연행에 오른 조선 문사들의 문학적 소재와 감각의 출처였고, 사실적인 미의식의 새로운 경지를 여는 통로로 소용되었다. 이처럼 유리창에 대한 조선 연행사들의 매혹이 앎에 다다르는 새로운 감각을 연 것은 매우 의미 있는 발견이지만, 그것은 매혹의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중국 문화와 문명에 대한 선망이기도 했다. 18세기의 연행사들은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를 압도하는 매혹의 시장에서 중화(中華)의 문화를 보편으로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면서, 중화의 학인(學人)으로서의 자기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홍대용은 유리창에서 그가 체험하였던 감각의 확대와 인식의 단절이라는 모순된 경험을 통해 시장을 다시 성찰하게 된다. 그에게 시장은 극장과 함께 욕망이 확대되고 재생산되는 장소로 인식된다. 시장에 대한 홍대용의 부정적 인식은 「의산문답(毉山問答)」의 문명비판론에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시장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시장은 감각의 소비와 욕망의 교환을 통해 개인의 본성을 해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바로 거기서 삶을 기르고 죽음을 보내는 삶의 유용성에 대한 자각이 시작된다. 유리창에서 홍대용은 삶의 토대를 이루는 조건들을 궁구하고 실천하면서 자기를 갱신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시장의 기능에 대한 그의 인식은 유리창이라고 하는 ‘실지(實地)’에서 탐구하고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빚어진 것이므로, 우리는 그의 부단한 자기 양식화의 과정이 행해진 시공간을 ‘실지로서의 유리창’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was intended for investigating the recognition of the market which appeared in the document of the travel of China by Dae Yong Hong(洪大容) whose nick name is Damheon(1731~1783). In particular, this study was aimed at focusing on Liulichang(琉璃廠) in Bejing to look into its spatial function and the process of self-formation of Joseon envoys(燕行使) in the space. A market has the necessity and convenience of life, enabling humans to live with further expanded possibility. Also, the consumption in the market can arouse the crisis of its being and restriction, for it leads to the destruction of the limited conditions of human survival. The space of a market, which features the liberty of its being and restriction, was deeply attracted by Dae Yong Hong who travelled China in the 18th century. A full of senses and profound knowledge on aesthetic sensitivity, which Dae Yong Hong and his later envoys experienced, occurred at the same time when they discovered the market of Liulichang. For Joseon literary men as enjoys, the market and its products were literature subject-matters, sources of their sensitivity, and a way to open up a new path for realistic aesthetic consciousness. In this aspect, that the attraction of the Joseon envoys to Liuiichang caused them to realize new senses related to their knowledge was a very meaningful discovery of the enjoys, but on the other hand, that was their envy for the culture and civilization of China that produced and consumed fascinating products. While looking at the fascinating market where the value of exchange overweighed the value of use, and while accepting and internalizing the Sino-culture, the envoys in the 18th century had formed themselves as a scholar learning Chinese culture. In the meantime, Dae Yong Hong had reflected a market again based on his contradictory experience of the expansion of senses and the disconnection of recognition in Liulichang. To him, like a theater, a market is recognized as a place where a desires is expanded and is reproduced. His negative recognition on a market seemed to be applied to the criticism on civilization in 「Euisanmundap(毉山問答)」, but, on the other hand, was considered his interest in a market. A market hurts a person's real nature through the consumption of sense and the exchange of a desire, but becomes a place where a person starts realizing the value of life, including living and death. Dae Yong Hong thoroughly investigated conditions of life, practiced them, and changed himself through his experience of Liulichang. In fact, such recognition was created through the process of exploration and practice of Liulichang as ‘the practical side(實地)’. In the aspect, we can call the time and space where his persistent process of self-formation took place as Liulichang as the practical 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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