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동명』의 문화사적 정체성과 문예의 역할
The Cultural and Historical Identity of the Magazine, “Dongmyeong” and the Role of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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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동명』은 폐간에 이르기까지 한 호도 빠짐없이 문예물을 수록하였다. 특히 ‘신생활 필화사건’을 계기로 하여 문예물의 비중을 크게 높여 문예물을 전면화하였다. 『동명』 소재 문예물을 전수조사한 결과 240여 편의 작품을 확인하였으며, 소설은 6편의 새로운 창작물을 발굴하였다. 문예물은 내부 필진이 주로 담당하였으며, 문예물의 다수는 번역물이 차지하였다. 이는 총독부 당국의 언론 탄압에 대해 세계문학의 번역이라는 외장을 취함으로써 검열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번역물의 경우, 다수의 번역자가 마구잡이로 작품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소수의 내부 필진이 중심이 되어 세계문학을 번역했기 때문에 비교적 주제가 선명한 편이다. 이들 번역물은 주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였으며, 자조를 실천하지 않는 인물의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자조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결론적으로 전체 문예물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자조였으며, 자조론의 문학적 번역으로 매체의 담론적 지향을 관철해 나간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동명』의 문화사적 의의는 첫째, 문학잡지의 공백기에 실질적인 문학작품 발표의 장으로 기능했다는 점이다. 『창조』와 『폐허』가 1921년에 폐간됨에 따라 1924년 『조선문단』이 창간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문예지의 공백기였다. 『동명』은 시사주간지를 표방하였지만 실제 문예물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고, 문예란을 두고 문학작품이 실릴 지면을 확보함으로써 문학사에 기여하였다. 동인지 시대가 끝난 이후 문예지가 본격적으로 창간되기까지의 시기를 『동명』이 대응한 것이다. 둘째, 민족주의를 토대로 한 잡지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와의 연대를 모색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신생활』은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매체로, 『동명』은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매체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실제 『동명』은 민족주의 대 사회주의라는 대립 구도를 지양하고, 이 두 사상의 통합을 위해 두 사상의 동거 가능성을 실험하였다. 문예물의 내용 분석에서도 확인하였듯이, 민족주의를 토대로 하면서 사회주의를 포용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Abstract
“Dongmyeong” contained literary works without omission of any single issue until it was discontinued. In particular, in the wake of the Incident of the serious slip of the pen in ‘New Life’, the proportion of literary works was greatly increased, and the literary works were fully developed. As a result of a full investigation of the literary works of “Dongmyeong”, about 240 works were identified, and the six works were newly discovered. The internal writers were mainly in charge of literary works, and most of the literary works were occupied by translations. This can be read as an attempt to evade censorship by pretending to be a translation of the world literature against the government‐general’s oppression of the press. For works based on translations, the subject matter is relatively clear because the majority of translators did not translate the works at random, but a small number of internal writers translated the world literature. These translation works were mainly literary figures of nationalism and socialism, and the necessity of self‐help was emphasized through the tragic ending of a character who did not practice self‐help. In conclusion, the theme consciousness that penetrated the entire literary works was self‐help, and it can be summarized as a literary translation of self‐help theory, which was carried out through the media’s discursive orientation. The cultural historical significance of “Dongmyeong” is first, that it functioned as a venue for the presentation of practical literary works during the hiatus of literary magazines. As “Changjo” and “Pyeheo (Ruins)” were discontinued in 1921, it was practically a blank period in literary journals until the magazine, “Joseon Mundan” was first published in 1924. “Dongmyeong” was advocated as a weekly magazine, but the proportion of actual literary works was quite high, and it contributed to the history of literature by securing a space for literary works to be published. “Dongmyeong” responded to the period from the end of the literary coterie magazine era until the publication of literary magazines in earnest. Second, despite being a magazine based on nationalism, it sought solidarity with socialism. Generally, some people view “New Life” as a medium representing socialism and “Dongmyeong” as a medium representing nationalism. However, in practice “Dongmyeong” avoided the confrontational structure of nationalism versus socialism and experimented with the possibility of cohabitation for the integration of these two ideas. As confirmed in the analysis of the contents of literary works, it was an effort to embrace socialism while basing it on nat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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