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節臣 柳坋 門人의 道學思想 一攷 - 李瓊仝⋅李繼孟⋅李穆⋅羅安世 등을 중심으로 -
A study on moral-philosophy thought of Lyuboon’s disci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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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유학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근간으로 하는 학문이다. 이를 토대로 한 조선시대 성리학적 정신문화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였으니, 계유정란(癸酉靖亂)에는 춘추절의정신(春秋節義精神)으로 발양되고, 연산군과 중종 사화(士禍)의 시기에는 도학정신(道學精神)으로 드러났고, 왜란(倭亂)과 호란(胡亂) 시기에는 선비의 의리정신(義理精神)으로 고양되었다. 생절신(生節臣) 유분(柳坋)은 평생 ‘유일불원(遺逸不怨)’의 정신을 지향하며 과거도 보지 않고 천거되는 여러 벼슬도 나가지 않으며 오로지 절의를 지켰다. 그는 서재인 유일재(遺逸齋)에서 학문을 연마하면서도 혜학루(惠學樓)에서 문인들을 훈도하고 절의를 고취시켰다. 그의 대표적 문인은 이경동(李瓊仝)⋅이계맹(李繼孟)⋅이목(李穆)⋅나안세(羅安世) 등이다. 이경동은 숭의(崇義)의 정신에 입각하여 매사를 처리하면서도 충효(忠孝)의 정신이 있었고, 과거 역사적 인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현재성도 되돌아보았다. 이계맹은 의연히 “신하는 죽더라도 어려움을 핑계해서는 안된다”는 정신으로 주어진 벼슬에 나아가 최선을 다하는 데 항상 직심(直心)으로 여러 일을 처리하였다. 이목은 직의(直義)의 정신에 입각하여 매사를 처리하다가 그만 짧은 생애로 마쳤으나, 그의 정신적 삶은 생명이나 생사보다는 유가적 인의(仁義)를 실현하려는 것이었다. 나안세는 지효(至孝)의 정신으로 부모를 봉양하면서 벼슬에 나아가서는 나라와 백성을 향한 충의(忠義)의 직분을 다하였다. 생절신 유분을 계승한 그 문인들의 도학정신에 대한 발굴은 한국유학 도맥(道脈)의 한 연원을 발견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Abstract
Lyuboon(柳坋), Seaingjulsin(生節臣), pursued learning of Sugi(修己: cultivating his moral character) and chiin(治人: administering people). Forcibly expelled, he left Seoul to retire to Junju. He, while his whole life, aimed at spirit of ‘yooilbulil(遺逸不怨: being expelled and not doing have grudge against anything)’. Ever since, he did not take the state examination, did not get into recommended government offical, and devotedly adhered to his principle. On brushing up study of Confucianism in Yooiljae(遺逸齋), he educated disciples and adhered to his principle in Hyehaklu(惠學樓). His representative disciples were Lee Gyungdong(李瓊仝), Lee Gyemaeng(李繼孟), Lee Mok(李穆) and Na Anse(羅安世). Lee Gyungdong, on conforming to the spirit of Sungeui(崇義: raising right), had mind of Chunghyu(忠孝: loyalty and filial piety). And he looked back his nowness on gazing into the past historic person. Lee Gyemaeng did his best on government post to resolute attitude. He always did his works by Jiksim(直心: straightforwardness). Lee Mok died at a young age while doing his works by being based on spirit of Jikeui(直義: truthful and right). But his spiritual life was that he realized more Ineui(仁義) of Confucianism than life and death. Na Ansei performed duty of Chungeui(忠義: faithfulness) for country and people and did everything he could his par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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