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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단군릉수축운동의 전개

The Development of the Improvement Campaign of Tangun Royal Mausoleum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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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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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숙종, 영․정조 이후 지속적인 수치 논의가 있기도 했고, 간헐적으로 수리가 있었던 檀君陵의 수축은 일제강점기에 비교적 적극적으로 전개된다. 이 글에서는 이 시기 단군릉수축운동의 전말을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하여 그 의미를 단군민족주의라는 일방의 검토만으로도 충분한지의 문제를 생각하기로 한다. 단지 동아일보에서 전개한 위인 선양 및 유적보존운동 차원이나, 대종교의 측면이 아니라, 이 시기가 식민지사회였음을 전제하고 그 상황 속에서 단군릉 수축을 위한 일련의 캠패인이 지니는 의미를 종합적으로 접근하려는 것이다. 이 시기 단군릉에 대해서는 衣履之葬과 嗣君之陵으로서의 이해가 있었다. 1930년대 단군릉수축운동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18세기말 이후 복수의 단군묘 존재를 확대하여 단군조선의 시조묘로서 단군릉과 함께 다수의 단군조선 및 후조선 왕릉의 존재를 언급한 張道斌의 이해를 주목할 것이다. 아울러 강동지역민을 중심으로 가시화된 단군릉수축운동의 과정을 상세하게 다루어 강동 유림→壇君墓守護契→檀君陵修築期成會→江東鄕約․檀君陵修築期成會라는 조직의 변화와 뒷받침이 있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이는 수축운동을 주도하던 강동군에서 친일 유림이 향촌사회의 자치규약인 계와 향약을 적극 이용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또 이 시기 동아일보에서 전개한 전조선인의 참여 유도를 위한 단군릉수축공사 성금운동에 대해서도 살펴보려고 한다. 동아일보의 단군에 대한 표기가 ‘壇君’과 ‘檀君’을 넘나들고 있음을 최남선의 「壇君論」과 관련하여 이해하고, 그 같은 변화와 단군릉수축운동의 관계를 추측하고자 한다.

Abstract

Traditionally the understanding on the Tangun tomb was as a fictitious ones in Joseon period. But in the late of Joseon period there came into appreciation as one among tomb of several kings in Old Joseon. In order to the background of the improvement campaign of Tangun royal mausoleum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We should watch the theory of Jang Dobin. He understood the Tangun royal mausoleum located in Kangdong-gun as the founder tomb of Tangun Joseon. Also he maintained that many royal tombs of Tangun Joseon and Gija Joseon are still in the area of Pyeongan-do. It is based on the expanded understanding that plural Tangun tombs existed in Kangdong-gun.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some formation established to process the improvement of Tangun royal mausoleum in Kangdong-gun, Pyeongannamdo. Especially, the confucians organized the fraternity to protect Tangun tomb, the action committee for the improvement of Tangun royal mausoleum and Kangdong hyangyak. And most of them were the pro-Japanese confucians. It means that this improvement campaign processed in the center of them. On the other hand the collect contributions for the improvement of Tangun royal mausoleum was connected with the theory of Tangun, which Choe Namseon wrriten for Dong-ailbo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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