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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에 드러난 군주의 표상과 고종의 실체

The role model of a monarch and the real substance of Kojong revealed in 『The Indepen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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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독립신문』은 당시 정세를 올바로 전달하고 백성들을 계몽함과 동시에 민간과 정부 사이의 소통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며 창간되었다. 그들은 먼저 일반 백성과 지식인 계층인 자신들을 분리해 계몽을 선도할 스스로의 입지를 정당화하고, 국내외상황의 자세한 보도, 시대에 필요한 일들의 개진, 정부를 향한 민간 고충의 전달 등을 실천해 나갔다. 당시 조선(대한제국)은 총체적인 국가 위기에 빠져 있었다. 『독립신문』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민을 단결시키고 충군․애국을 이끌어낼 국가 통합의 구심점인 초월적 존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군주는 이러한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대상이었고,그들은 군주를 부각시켜 신민으로부터의 충성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따라서 고종이문명진보와 자주독립을 추구하는 현군이라는 사실을 선전해 군주를 향한 충성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군주가 각국과 대등한 권위를 가져야 함을 강조함으로써 신민의단결과 정치로의 관심을 유발시키려 했다. 또한 『독립신문』은 실질 정치에서 철저한 궁정 분리를 시도했다. 그들은 군주와정부와의 차별화를 통해 당시 실정의 책임을 정부에 전가시키고 국가를 대표할 군주의 신성함을 유지해 나갔다. 『독립신문』은 군주의 지위․역할을 충성의 대상, 타국과 대등한 권위 확보, 국정의 총괄자로 표상화시키고, 정부만을 정책 비판과 요구상대로 규정한 것이었다. 이는 『독립신문』이 나라의 상징인 군주의 절대성과 신성함을 중시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원인은 국정을 운영하는 군주 고종의 자질에있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고종은 유약해서 간신들에게 좌우될 뿐만 아니라, 우유부단해서 단호한 인사 행정과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약속을 수행하지않고 사적이고 편중된 이해관계 속에서 정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국가 통합에 군주가 지닌 상징성이 필요하면서도 군주에게 통치권을 부여할수 없다는 딜레마를 야기시켰고, 『독립신문』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상징적 군주를 강조해 갔다. 그러나 『독립신문』의 지향과는 달리 고종은 실질적인 권력 행사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며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 등극으로 군주의 국정장악력을 한층 강화시켰다. 이러한 현실은 고종이 가진 군주권 강화 의지와 실질적인 역할을 인정하고 그와의 직접소통을 중시해야할 필요성을 가져왔다. 그럼에도 『독립신문』은 애민하고 자애로우며 타국과 대등한 권위를 가져야 할 군주 표상에 집중하며 고종을 현실 정치에서 제외시키고자 했다. 그 결과 갑신정변․갑오개혁 세력들이 군주의 실질적인 통치권 제한을 시도하다가 고종의 반발로 정계에서 도태된 것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되었다. 다시 말해 『독립신문』이 제시한 군주 표상과 고종 실체와의 괴리가 심각한 상황에서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에 따라 양측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극한 대립 국면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다.

Abstract

In the late 1890s, Korea was plunged into a catastrophic national crisis. To overcome the critical situation, 『The Independent獨立新聞』 recognized the necessity of a pivotal figure which can unite the Korean people and generate loyalty and patriotism. 『The Independent』 judged that only the Monarch had such a legitimacy. In order to secure the appropriateness of loyalty to the monarch, 『The Independent』 advertised that Kojong pursued the independence and civilization. Also in order to try to band Korean people together and to arouse interest in politics, 『The Independent』emphasized Kojong's authority which is equal to that of monarchs in other countries. Therefore, Kojong was symbolized for the head of state affairs, target of allegiance, equal authority with other countries. In particular, 『The Independent』 claimed the symbol of the country only to Kojong. But contrary to the intention of 『The Independent』, Kojong continued to pursue the practical exercise of power and strengthened domination by himself. This reality led to the need to admit Kojong who will strengthen the sovereignty and practical role and to communicate directly with him and had to be oriented. Nevertheless, 『The Independent』 focused on the representation of the monarch, and sought to exclude Kojong from actual politics. Therefore 『The Independent』 faced the backlash from Kojong. Eventually there came to exist a serious discrepancy between the role model of a monarch proposed by 『The Independent』and the real substance of Kojong. Then 『The Independent』 failed to solve this problem, a serious confrontation occurred between 『The Independent』 and Kojong in political interests of both si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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