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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음악인의 도미열과 한미음악교류의 위계

Musicians’ American fever in the 1950s and the hierarchies of Korea-U.S. Musical ex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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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1950년대 한국에서의 음악적 냉전을 탐구한다. 해방 이후 한국은 미국의 절대적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고, 미국은 아시아를 안보의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하며 아시아의 신생국가들을 지원해 반공 블록을 강화하려 했다. 또한, 경제적 지원과 함께 음악, 미술, 문학, 영화 등 문화 분야를 통해 자유주의와 선진 민주주의의 가치를 아시아에 전파하고자 했다. 1950년대 미국의 음악적 지원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첫째, 음악지도자들의 미국 연수를 지원하여 이들이 미국의 선진적 음악 환경을 직접체험하도록 했다. 이들 대부분은 유학 경험을 통해 자유세계의 옹호자로 성장하였고, 귀국 후 한국 음악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둘째, 미국은 자국의 음악가들을 지속적으로 한국에 파견하여 한국인들에게 미국 음악의 발전상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문화적 경험이 되었으며, 한국 언론은 이를 한미 관계의 특별함을 알리는 계기로 활용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 음악가들의 공연은 일본을 포함한 자유 아시아 지역 순회 일정을 따르는 과정에서 한국을 방문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1950년대 한미 음악교류는 상호주의를 표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방적인 미국화의 과정이었다. 한국 음악가들은 이 과정에서 반공과 자유라는 현실의 모순과 그 한계를 직시해야 했다.

Abstract

This study explores the dynamics of musical cold war in 1950s Korea. Following liberation, Korea came under the significant influence of the United States, which recognized Asia as a critical security region and sought to solidify an anti-communist bloc by supporting newly independent Asian countries economically. In addition to economic aid, the U.S. promoted its liberalism and advanced democracy in Asia through cultural support in fields such as music, visual arts, literature, and film. U.S. musical aid to Korea in the 1950s manifested in two primary ways. First, it supported music leaders’ study abroad in the U.S., allowing them to experience firsthand the advanced American music environment. After their return, these musicians became advocates of the free world and eventually rose to significant positions within Korea’s music sphere. Second, the U.S. regularly dispatched American musicians to Korea, providing Koreans with an opportunity to experience the developments of American music. This created unique experiences for Koreans and was leveraged by Korean media as an opportunity to emphasize the special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nations. However, most American musicians visited Korea as part of broader tours across the free Asia region, including Japan. In conclusion, the Korea-U.S. musical exchange in the 1950s was framed as reciprocal but was, in reality, a process of unilateral Americanization. Korean musicians were compelled to confront the contradictions and limitations of the anti-communist and liberal ideals during this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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