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迦智山門의 法統과 位相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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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신라 迦智山門의 개산과 초기 발전과정을 돌이켜 보며 道義와 體澄(804-880)을 중심으로 관련 업적들과 山門의 역사 지리적 가치를 음미해 보려 하였다. 신라 하대에 도의는 중국에 가서 六祖 慧能(638~713)의 法孫인 馬祖 道一(709~788)의 제자 西堂 智藏(735~814) 으로부터 受法하고 頭陀行을 하며 禪院 淸規의 저자 百丈 懷海(749~814)의 인정과 칭찬을 받고 귀국하여 南宗 祖師禪法을 전승하려고 가지산사에서 禪門을 열었다. 가지산사(보림사)는 전남 해안에 가깝고 산천이 수려하며 안온한 지역에 자리하여 禪修行道場으로 적합한 곳이다. 당시 사정으로 보아 武州(현재 光州)지방의 포구로 귀환하여 그 지역에서 활동하던 장보고 세력의 도움을 받은 것 같다. 경주의 헌덕왕과 맞지 않아 왕도를 떠나 설악산으로 가서 조용히 전법교화하였다. 이는 달마와 양무제의 고사와 유사하다. 염거에게 법을 전하였고 그는 체징에게 전했다. 그들의 활약으로 당시 침체하던 敎學위주의 종교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선도적 역할을 하여 한국불교사 내지 정신문화사에 획기적인 변화를 추동하였다. 이후 체징의 가지산사 주석으로 산문은 크게 번창하게 되었고 후예들에 의하여 九山禪門의 으뜸이 되었으며, 후대에 一然과 太古 등에 의해 曹溪宗으로의 통합에도 주도적 역할을 함으로서, 오늘날 한국불교계를 대표하는 조계종은 도의를 宗祖로 추존하게 되었다. 가지산문은 보림사를 중심으로 강원도와 경상도에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전국적인 교화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도의의 법을 이은 문인들은 선문의 법통에 대한 정체성 내지 주체적 인식이 확고하였고, 이는 개산조 도의가 중국 선종의 初祖 菩提達摩와 비견될 수 있는 자긍심으로 이어졌으며, 한국불교 전통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확정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도의와 같은 인물은 동아시아 내지 세계사적 맥락에서 바라보고 평가해야 할 줄 안다.
Abstract
It is a review of the position and Dharma lineage of Gajisanmun(迦智山門 Gaji Mountain Seon School, GMSS) of Silla(新羅), Korea, through the reinterpretation and reevaluation of historical sources regarding the GMSS in terms of geographic and religious approach. The life and thoughts of Seon(禪 Chan/Zen) Master Doui(道義), the First Patriarch of Korean Seon Tradition, as well as the founder of Jogye Order of Korean Buddhism has been reviewed. He was given Dharma name along with Mind Transmission from Chan Master Hsi-tang Chih-tsang(西堂 智藏 735~814), a disciple of Ma-tsu Tao-i(馬祖 道一 709~788). His character was also recognized and praised by Pai-chang Huai-hai(百丈 懷海 749~814). Doui established the GMSS and transmitted the Dharma to his disciple Yeomgeo(廉居) in Mt. Seolak. Yeomgeo transmitted it to Chejing(體澄 804~880) who revitalized Gajisansa temple in Mt. Gaji. Masters of GMSS had done excellent Dharm service and get recognition from the people of the country as the representative school of Seon Tradition in Korea. In conclusion, it could be said that Doui's characteristics of the First Patriarch of Seon Tradition in Korea are the same as the First Patriarchs of China, Bodhidharma. Doui's contribution to the world should be reevaluated in global con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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