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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단팔각’ 연화대좌의 통일신라 수용과 전개

Acceptance and Development of the ‘Octagonal Three-step’ Lotus Pedestal in United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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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삼단팔각’ 연화대좌의 시작은 석굴암 본존상 대좌이다. 석굴암 본존에서 시작된 8세기 중엽 ‘삼단팔각’ 연화대좌의 가장 큰 특징은 중대석의 높이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다. 이 시기 중대석은 각 면의 가로와 세로가 거의 비슷한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를 이룬다. 유사한 특징을 지닌 8세기 중엽경의 보리사석불좌상, 766년 석남암사 비로자나불좌상 역시 같은 범주에 둘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후 8세기 후반~9세기 전반으로 편년되는 불상의 대좌는 중대의 높이가 확연히 높아지고, 간혹 중대 안상이 새겨지거나, 안상 안에 각종 부조가 등장한다. 이후 9세기 중엽부터는 중대 높이는 큰 변화가 없지만 중대와 하대 사이에 팔각의 고임석이 덧붙여지면서 앞 시기의 대좌와 구분 지워진다. 아울러 하대에서 분리된 하대받침의 높이가 높아지고, 역시 안상 안에 각종 부조가 새겨진다. 동화사, 도피안사, 취서사의 불좌상 등을 대표 예로 꼽을 수 있다. 9세기 중엽에 정형화된 이러한 대좌형식은 꽤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어 고려 전기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진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대좌의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높이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높이는 대좌의 절대적인 높이가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불상 대비 대좌의 높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는데 이는 통일신라 ‘삼단팔각’ 연화대좌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이 때 대좌의 높이를 높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중대의 높이이다. 중대의 높이가 높아짐에 따라 중대 면석은 정사각형에서 점차 위아래가 긴 직사각형으로 변해갔으며, 중대와 하대 사이의 고임석을 둔다든지, 하대석과 그 아래 받침을 별석으로 제작하면서 대좌의 장식성이 강해지는 것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이다. 이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불좌상의 대좌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식 및 양식이 달라지며, 이러한 변화는 불상양식의 흐름과 대체로 일치한다. 불상의 대좌는 어쩌면 불상보다 더 정확히 시대양식을 반영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 글은 불상 대좌 변화의 대체적인 윤곽잡기를 통해 향후 필자가 추구하려 하는 통일신라 불교조각 연구의 기초 작업 중 하나로 삼으려 하였으며, 지금까지 연구자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광배나 대좌의 중요성을 점검해보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려는 의도로 쓰인 것이다.

Abstract

The beginning of ‘octagonal three-step’ lotus pedestal was the pedestal of the main statue of Seokguram(石窟庵). The most distinct feature of ‘octagonal three-step’ lotus pedestal in the middle 8th century, which began with the main statue of Seokguram, is that the height of the middle pedestal is relatively low. Each side of the middle pedestal in this period had an almost square form in which its width and length are almost the same. A seated stone statue of Buddha in temple Borisa(菩提寺) in the middle 8th century and seated statue of Viroçana Buddha in temple Seoknamamsa(石南巖寺) in 766 fall within this same category. Interestingly, since then, the pedestal of Buddha images chronologized into the late 8th century and the early 9th century had strikingly heightened the middle pedestal, and ansang(眼象) of the middle pedestal was carved or various embossed works appeared in ansang. Since the middle 9th century, though there was no change in the height of the middle pedestal, the distinction from the earlier pedestal disappeared as an octagonal stone was added. Moreover, the socle of bottom pedestal, separated from the bottom pedestal, was heightened, and various embossed works were also carved in ansang. Representative examples include the seated Buddha images in temple Donghwasa(桐華寺), temple Dopiansa(到彼岸寺), and temple Chwiseosa(鷲棲寺). Such a form of the pedestal, established in the middle 9th century, persisted for a pretty long period of times without great changes until the middle Goryeo age. The greatest change in the pedestal along the flow of time, as you know, is the height. Of course, needless to say, the height here is not an absolute height. The height of the pedestal, compared to the Buddha image, had increased over time, which was the most noticeable feature of ‘octagonal three-step’ lotus pedestal in United Silla. Here, the decisive factor affecting the increased height of the pedestal was the height of the middle pedestal. As the height of the middle pedestal increased, the square form of the middle pedestal was gradually changed into the rectangular form, and changes over time include added octagonal stone between the middle pedestal and the bottom pedestal and the enhancement of the decoration of the pedestal with the bottom pedestal stone and its pedestal produced separately. As is discussed in this thesis, the form and style of the seated statue of Buddha pedestal are changed and this change usually agrees with the trend of the style of the Buddha image. In a sense, the statue of Buddha pedestal can be said to reflect contemporary styles more accurately than the Buddha image. I have tried to make this thesis as part of my pursued basic work in the research of Buddhist sculpture in United Silla through a rough outline of the changes in Buddha’s pedestal. I intend with this thesis to review the importance of the Buddhistic halo or the pedestal, which have been away from researchers’ interest so far, and to remind their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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