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掛陵의 문헌적 고찰
Review of Literatures on the Gwoereung in Gyeo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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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경주 괘릉은 능역 내에 있는 서역인 석상들의 유명세로 인해 오래 전부터 주목을 받아 온 곳이다. 괘릉은 분명한 신라의 왕릉임에도 불구하고 그 명칭 때문에 능의 주인을 둘러싸고 혼선이 빚어진 곳이기도 하다. 본고는 신라 왕릉으로서의 괘릉의 호칭과 능주가 문무왕릉으로 오랫동안 잘못 알려져 온 내력에 대한 역사적 변천 과정을 밝히려는 것이 목적이다. 첫째, 「羅陵眞贗說」로 촉발된 신라 왕릉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았다. 화계가 「羅陵眞贗說」에서 제시한 신라 왕릉 11기와 영조 6년(1730) 이후 17기가 더해진 것이 문제로 제기된 내용이다. 이를 정조 때의 기록인 『홍재전서』와 『일성록』에 나오는 28기의 왕릉 명칭을 비하여 그동안의 잘못된 사안을 수정하였다. 즉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10기의 신라 왕릉에 영조 6년 18기가 더해져 정조 때 28기에 대한 보살핌과 수호문제가 나온 것으로 본 것이다. 또한 신라 왕릉에 관한 문헌을 검토하면서 현전하고 있는 왕릉까지를 개괄적으로 정리하였다. 둘째, 괘릉은 조선 후기에 가서야 『동경잡기』에 그 호칭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당시 누구의 능인지도 모르고 괘릉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어졌고, 이내 문무왕릉으로 알려져 내려 왔다. 이러한 내역을 조선 후기 유학자들의 경주 유력기를 통해 살펴보았다. 셋째, 최치원의 사산비명 가운데 「대숭복사비문」에 나오는 원성왕릉의 조성 경위를 살펴보고, 「지증대사비문」에서 원성왕의 후손을 곡릉곤손으로 표현한데서 괘릉이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조선 후기 실학자를 비롯한 유학자들 사이에 사산비명이 유행한 저간의 사정을 통해 조선 후기에 곡릉에서 괘릉으로 변화해 갔을 것으로 추정해 보았다.
Abstract
The Gwoereung Royal Tomb in Gyeongju has been widely known due to the popularity of the stone sculpture of foreigners in the Gwoereung zone, receiving attention for a long time. It is clearly one of royal tombs from Silla Dynasty, however, its name is confusing to estimate whom the tomb belonged to. Present study is to identify the historical facts that the Gwoereung is wrongfully known as the tomb of the King Munmu. First, discussion on Silla royal tomb triggered by the 「Rareung Jinanseol」 is examined. Hwagye had claimed in the 「Rareung Jinanseol」 that there were 11 royal tombs but an issue was raise as 17 tombs were added in the time of King Youngjo (1730). Wrongful facts are corrected by comparing 28 royal tomb names recorded in 『Hongjaejeonseo』 and 『Ilseongrok』 recorded in the time of King Jeongjo. 『Sinjeung Donggukyeoji Seungram』 has recordings of taking care of 28 roayal tombs in the time of King Jeongjo adding 18 royal tombs in the time of King Youngjo to the 10 royal tombs of Silla Dynasty. Literatures on Silla royal tombs are examined to identify all royal tombs we have come to know. Second, the name Gwoereung began to show up in historical writings in the late Joseon period. It was called Gwoereung back then without knowing whose tomb it was. Then, soon after, it was known to be the tomb of the King Munmu. Such fact was examined through the Gyeongju Yeureokgi written by Confucian scholars in late Joseon. Third, establishment of Wonseongwangreung royal tomb was examined as it appeared in 「Daesungboksabimun」 by Choi Chiwon. In it, descendants of the Queen Wonseong was known as ‘Gokreunggonson’ which might be the origin of the name Gwoereung. Through the popular trend among the Confucian scholars, ‘Gwoereung’ might have been derived from ‘Gokre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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