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기이〉편 太宗 春秋公條의 내용 구성과 의미
The record of T’aejong Ch’unch’ugong in the Samguk y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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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기이>편 제1 가운데에서 가장 방대한 내용으로 구성된 太宗 春 秋公條를 15개의 사건으로 나누어 고찰해 보았다.《삼국유사》태종 춘추공조의 기록은《삼국사기》를 전거로 해서 많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중국사서 및 古記類와 別記 類를 인용하여 전설이나 관련 자료를 보충하여 일정 기준에 의해 첨삭하였다. 태종 춘추공조의 神異 기사는 백제 멸망과 관련된 흉조들을 제외하면, 태종 춘추공 보다는김유신의 神異性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삼국유사》 태종 춘추공조의 주인공은 태종 춘추공이다. 이들 기록은《삼국사기》와 중복되는 점이 많지만, 편찬자의 의도에 따라 편집ㆍ 서술되었다. 즉, 태종이라는 인물에 주목하여 많은 일화를 통해 태종 집권기의 신이성을 전하고 있다. 백제 멸망 과정에 대한 기록은 백제 의자왕이 주색에 빠져 정사를 게을리 해서 국가를 멸망시킨 점을 부각시켜 태종 무열왕의 치적과 대비함으로써, 무열왕대가 聖代였음에 반해 의자왕대는 패망의 시기로 인식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고구려의 위세나 불길한 징조에 위축되는소정방과 唐나라 군대를 기록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또한 나라 잃은 슬픔을 타사암 전설로 그려 냄으로써, 삼국통일의 터전을 마련한 왕으로 김춘추를 인식하고그의 太宗이라는 廟號를 지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결국《삼국유사》<기이>편에서 말하려고 한 것은 태종 춘추공 시기의 삼국통일에 대한 이야기에서 나아가, 고려 후기 聖代에 대한 희망이었다고 생각한다. 즉,《삼국유사》 태종 춘추공조를 통해 太平聖代를 갈구하고, 그 聖代를 이룬 신라의 왕으로 태종 춘추공을 기억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section of T’aejong Ch’unch’ugong, which is the most voluminous part within ‘Ki’i I’ in the Samgukyusa, dividing it into fifteen events. While much of the record of T’aejong Ch’unch’ugong in the Samgukyusa relies on the Samguksagi, the former complements the latter in the sense that some legends and sources not mentioned in the Samguksagi were added to the Samgukyusa. The ‘Shini’ lines of the record of T’aejong Ch’unch’ugong, with the exception of the omens relating to the fall of Baekje, place focus more on the loyalty of Kim Yushin than on T’aejong Ch’unch’ugong himself. However, the main subject of the section ‘T’aejong Ch’unch’ugong’ in the Samgukyusa is T’aejong Ch’unch’ugong. The record of the Samgukyusa, though overlapping that of the Samguksagi to a certain extent, was written and edited by the editors with distinct intentions. That is, they tried to describe the historical situation they were facing through a series of anecdotes with a focus on T’aejong. The editors emphasized King Uija’s indulgence in intemperate pleasure, to which they attributed the collapse of Baekje, and contrasted it with the achievements of King T’aejong Muyŏl. This tactic was intended to depict the region of King T’aejong as an age of prosperity and that of King Uija as an age of fall. They also wrote about the power of Koguryŏ and Su Dingfang and the Tang Empire being daunted by ominous signs, which shows the editors’ hostility toward them. And the editors expressed their sorrow at the fall of their country with the T’asaam legend. They recognized Kim Chunchoo as a historical figure that laid the foundation for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and in doing so tried to uphold his title as the founder. Thus, what the editors wanted to say in the ‘Kii I’ in the Samgukyusa is T’aejong Ch’unch’ugong’s feat of unifying the Three Kingdoms, which is a reflection of their longing for a reign of prosperity and peace in the latter period of Koryŏ. In short, they expressed their hope for an age of peace through the story of T’aejong Ch’unch’ugong and tried to commemorate him as a king of Silla who made such an achie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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