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경 사찰 불상의 재료 변화
Changes in materials of Buddhist statues in the capital of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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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경의 불상은 경주 남산을 포함해 산지에 남아 있는 석불상과 마애불상 등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러한 연유로 신라 불상의 주류를 처음부터 석불이나 마애불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신라 왕경의 중요사찰에는 현존하지 않는 더 다양한 재료의 불상이 봉안되었다. 본고에서는 먼저 『삼국유사』에 기록된 불상에 대해 재료별로 구분해보고, 아울러 최근 발굴된 고고자료를 통해 신라 왕경 사찰의 불상 재료에 대한 변화를 찾아보았다. 신라 왕경의 핵심사찰이라고 할 수 11개 사찰(칠처가람과 성전사원) 중 7개소에서 소조불상과 금동불상을 봉안한 것으로 확인된다. 반면 11개 사찰 중 창건 당시 석불상을 주존으로 봉안한 사례는 없었다. 신라 왕실에서 석불상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석불사(751년경) 조성 이후이다. 국가가 주도한 석굴사원의 명칭을 ‘石佛寺’라 부른 것은 그 만큼 ‘石佛’을 강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석불사가 조성된 이후부터 신라 왕경의 사찰에서도 주존상으로서 석불상을 봉안했다. 특히 왕실사찰이나 중요사찰에서도 석불상을 안치한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신라 왕경 사찰의 불상이 소조불상이나 금동불상에서 완벽히 석불상으로 전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통일기 이후에도 여전히 신라 왕경의 사찰에는 금동불상이나 소조불상이 조성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세기 후반 이후 석불상은 왕경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유행하는 신라 불상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된다. 마지막으로 철불은 신라 왕경 사찰 어디에도 만들지 않았다. 신라 하대 강원도나 전라도와 같은 지방에서는 대형의 철불이 비교적 성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왕경에서는 조성되지 않았다.
Abstract
The majority of the Buddhist statues in the capital of Silla are left in the mountains as stone Buddhist figures and Buddhist images carved on a cliff including Namsan Mountain in Gyeongju. For this reason, it could be considered that the main Buddhist statues of Silla were normally made in stone Buddhist figures or Buddhist images carved on a cliff. However, various materials of Buddhist statues, which do not exist anymore, were enshrined in the important temples of the capital of Silla. This paper attempts to classify Buddhist statues recorded in the ‘Samgukyusa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by materials firstly. Moreover, this will seek changes in the materials of Buddhist sculptures in the Silla temples through recently excavated archaeological data. It is identified that seven of the most important eleven temples in Silla including Chilcheogaram (seven temples that existed before Buddha appeared) and Seongjeonsawon (Administrative organization of the Royal Memorial Monasteries), enshrined clay Buddhist sculpture and gilt-bronze Buddhist figures. Among those eleven temples, there was no case of enshrining stone Buddha statues as the leading Buddha figure of a temple when they were established. However, the Silla royal family began to pay attention to the stone Buddhist sculptures after the construction of the Seokbulsa Temple (circa 751). The state-led stone cave temple was named ‘Seokbulsa (石佛) Temple’ could be meant to emphasize the name ‘Seokbul (stone Buddha figure).’ Since the Seokbulsa Temple was built, a stone Buddha statue was enshrined as the central Buddha in the Silla temples. In particular, it is believed that stone Buddhist statues were enshrined in royal temples and important temples. Despite this movement, it is hard to say that the Buddhist figures in the Silla temples were completely converted from clay or gilt-bronze Buddhist statues to stone Buddhist figures. Even after the Unified Silla era, gilt-bronze or clay Buddhist figures were still created in the temples of Silla. Into this circumstance, the stone sculptures became one of the main types of Buddhist statues since the late 8th century and were popular in the capital and the provinces. However, iron Buddhist sculptures were not produced anywhere in the capital of Silla. Although iron Buddhist figures were quite famous in the provinces, such as Gangwon-do and Jeonla-do in the late Unified Silla era, they were not popular in the capital of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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