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경 불탑에 대한 고찰
A Study on the Capital of Silla and stup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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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신라 왕경인 경주는 밀집도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탑이 건립되었을 뿐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다양해 가히 탑의 전시장으로 불릴 만하다. 우선 탑의 분포는 사원의 건립계획에 따라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서천과 북천변 이후 낭산일대를 마지막으로 점차 주변부로 확대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남산에서 탑 집중 현상이 나타난다. 탑의 형식은 왕경 중심부에서는 목탑과 전탑이 우세하고 외곽지역으로는 석탑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단층기단석탑은 경주 남산에서 발생한 독특한 탑형임을 알 수 있다. 신라탑파사에서 상징적 존재로 나타나는 쌍탑의 경우 왕경에서는 8세기에 집중되다가 9세기 이후에는 소멸되고 왕경 외곽으로 전파된다. 왕경 내 탑은 성립시기부터 호국의 주체로 시작되었고 동시에 국가의 흥망을 지켜주는 대상체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후 『무구정경』 등 조탑경의 유행으로 추복의 기능과 예배의 기능이 부각된 것으로 보았다.
Abstract
Gyeongju, the Capital of Silla, is called an exhibition hall for stupas because it not only has the largest number of stupas built in Korea in terms of density but also has diverse stupas in terms of forms. First, it can be seen that the distribution of stupas spread according to temple construction plans. Stupas were first distributed around West river and North river and then finally around Mt. Nangsan, The distribution gradually expanded to the surroundings of Gyeongju, and finally concentrated on Mt. Namsan. As for the forms of stupas, wooden stupas and brick stupas are dominant in the center of the Capital, and stone stupas are dominant in the outskirts. It can be seen that single story stylobate stupas are unique stupas that appeared in Mt. Namsan in Gyeongju. Twin stupas, which appear as symbolic existences in the Silla stupa history, were concentrated in the Capital in the 8th century, disappeared from the Capital and spread to the outskirts of the Capital since the 9th century. The stupas in the Capital began to be built for national protection from the time of its establishment, and at the same time played a role as objects protecting the rise and fall of the country. Thereafter, scriptures for stupa construction such as Mugujeonggyeong (無垢淨經) became popular indicating that the functions for wishing happiness and worship were magnif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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