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魏 文明太后 執政期의 韓 · 中 관계
The Relations Between Korea and China During the Reign of th Queen Mother Wen-Ming(文明太后) in the bei-wie(北魏) Era
0
조회
0
다운로드
4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文明太后 집정기에 북위와 고구려 사이에 발생했던 두 가지 사건, 즉 ‘六宮未備’를 내세우며 문명태후가 勅令으로 장수왕에게 그 王女를 천거하도록 요청했던 사건과, 고구려를 연합공격하자는 백제의 요청에 따라 발생했던 북위와 고구려의 대립 이 두 사건은 兩國 관계사상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이해가 이 글의 주지이다. 納妃문제는 문명태후가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고 통치권을 안정시키려는 목적으로 요청한 것이었지만 일방적이고 강압적 요구에 고구려 장수왕이 반발하면서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했고, 고구려를 연합공격하자는 백제의 요청을 북위는 비록 거부하였지만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나타났던 북위의 강압적 태도로 이 또한 고구려의 반발을 야기하였다. 그런데 문명태후의 2차 臨朝稱制기간, 즉 太和年間에 들어와 북위는 고구려를 우대, 회유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납비문제나 백제의 청병사건에서 보듯 강압적 방법을 통해서는 고구려를 통제할 수 없다고 인식한 북위의 고구려에 대한 정책변화였다. 북위의 강압적 對高句麗정책의 고구려 우대 혹은 회유정책으로의 변화, 이것이 바로 납비문제와 청병사건의 양국관계사에서의 의의라 생각한다.
Abstract
此文試就討論在北魏文明太后掌權期間發生的兩件事件對北魏和高句麗兩國關係史上的意義. 那兩件事件之一, 是於公元466年北魏文明太后以六宮未備爲由對高句麗長壽王要求推薦其女的事, 另外一件事是在472年百濟蓋鹵王對北魏‘請兵’以挾攻高句麗的事. 文明太后要求高句麗王女的目的在於加强統治權這一点上, 然從高句麗的觀點來看, 由於其方法太固執, 結果北魏受到高句麗方面强烈的反對而告失敗. 蓋鹵王對北魏‘請兵’之事, 也在其進行過程出現了北魏觸動高句麗感情的事. 一般來講, 在五~六世紀東亞細亞國際形勢上出現了所謂國家關係的‘連動性’, 是時的北魏面對北方柔然和南方劉宋·西方吐谷渾·東方高句麗的包圍形勢, 北魏因這種形勢所逼, 不能忽視高句麗的感情. 進而, 我們不難發現, 自從太和年間開始北魏對高句麗的政策由高壓態度漸變爲優待以及懷柔方向. 這是因爲北魏怕高句麗脫離和北魏自身的關係而成爲敵國. 本人以爲, 要求推薦王女的事件和百濟對北魏的請兵事件就是成爲北魏轉變對高句麗政策的契機. 這兩件事件對北魏和高句麗兩國關係史上的意義就是在這一点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