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국가형성과 발전단계에 따른 방어체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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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신라 초기부터 통일기까지 신라의 방어체계의 형성과 변화과정을 살펴보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문헌의 전투 기록과 축성 기록 등을 신라 성곽 조사 자료와 종합하여 신라의 방어체계가 시기별로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정비되고 또 어떠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크게 4시기로 구분되었다. 1기는 5세기 이전으로 신라의 방어체계 태동기라고 할 수 있다. 진한 소국의 중심부에 토성을 축조하고 중앙에서 파견된 성주가 재지 수장층을 통해서 간접지배를 실시하였다. 이 시기의 각 성곽들 간에는 특별한 연계 관계가 없었다. 2기는 5세기후반∼6세기 전반으로 경주와 교통이 편리한 전략적 요충지에 거점성을 축조하고 이를 중심으로 주변지역의 성곽들을 통합하여 지역방어체계를 구축하였다. 이 시기는 전국적인 규모로 축성사업이 이루어졌고 관도와 우역도 정비되어 성곽간에 유기적인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3기는 6세기 후반∼7세기 후반으로 신라가 소백산맥 이서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하는 시기였다. 전국적으로 4개의 광역방어체계가 형성이 되었으며 주성-군성-현성 등으로 3단계의 종심방어축도 형성되었다. 소경이 설치되어 중앙의 도움이 없이도 상당기간 독립적인 능력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광역방어체계를 갖추었다. 4기는 신라가 나당전쟁 직후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을 통합하여 새로운 정치, 사회, 경제, 군사 등의 제도를 일신하는 국가완성기에 해당된다. 백제 지역과 고구려 지역에 각각 2개씩 소경을 설치하여 6주를 지원하도록 하였다. 주성-군성-현성의 3단계가 전국적인 규모로 갖추어져 신라의 전영토를 포함하는 전역방어체계가 완성되었다. 신라의 방어체계의 정비는 당연히 접경지역이나 전투가 빈번한 지역을 중심으로 먼저 이루어졌다. 동일한 시기라 할지라도 2시기 이상의 방어체계가 병존하기도 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figure out how Shilla formed and made progress its defensive system in 4th to 7th century. Historical records and archeological remains used to solve the question. After studying the defensive system of Shilla, I could find that the defensive system of Shilla can be devided to four period. First times will be before the first half of the 5th century. Shilla built citadels in center of the small states and sent officer to keep the heads of small states under control. But the citadels existed independently of each other without connection. It can be said a defensive system of the zone. Second times will be from the second half of the 5th century to the second half of the 6th century. Many of stronghold mountain fortress walls to make the integration of the region was built in the strategic key point which is important . Main roads which connected Kyungiu to front line have been reorganized too. This was done in the organic connection among the every mountain fortress walls. It can be said a defensive system of the region Third times will be from the second half of the 6th century to the second half of the 7th century. In this times, Silla extended his territory until the west of Sobaek mountions. That he was building a defensive system to protect the new territory. It was divided three step as Jusung(州城)-gunseong(郡城)- hyeonseong(縣城). It can be said a defensive system of wide-area. Each of they had the ability to perform to independent fight without the help of the central government. Fourth times will be the period of unified silla. Silla built up the depensive system of the entire territory that was in the form of rib of pan centering around Kyungiu. Silla first built the detensive system in frequent area of battle and front line. Even if the same times it was coexisted with the mixed system more than defensive system of two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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