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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 수리시설의 역사성과 의미

Study on the Historicity and Significance of an Ancient Korean Water Instal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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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예나 지금이나 농업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한발, 홍수, 바람, 서리 등 자연재해였다. 전근대사회에서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 수리시설의 확충과 정비였다. 이는 고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인 고대저수지로는 김제 벽골제, 제천 의림지, 상주 공검지, 영천 청제와 발굴조사를 통해 알려진 울산 약사동저수지 등을 들 수 있다. 김제 벽골제의 관개 면적은 조선 초기에 약 1만 결이었다. 수문학적인 연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영천 청제의 관개 면적은 1454년에 만들어진 『경상도속찬지리지』에는 79결로 나오는데 이는 1929년에 작성된《청제문부》의 관개 면적과 비슷하다. 500여년의 시차가 있지만 관개 면적이 거의 같다는 사실에서 미루어 청제가 처음 만들어진 538년 당시의 관개 면적도 이와 비슷하였을 것이다. 조선시대 『제언절목』에는 나무로 물통을 설치하는 내용과 나뭇가지를 깔아 제방을 다지는 부엽공법 내용이 나온다. 이는 고대 저수지의 발굴에서 확인된 공법과 일치한다. 한편 『제언절목』에 시장을 열어 시장에 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돌과 나무를 가지고 오도록 하여 제방 축조에 필요한 석재와 목재를 확보하였다는 방법은 고대 저수지 축조에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김제 벽골제의 수문은 바깥 제방에만 보이지만 <벽골제중수기>에 의하면 안쪽 제방에도 있었다. 이는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고대저수지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첫째, 농업생산력을 높이고 농지개간을 촉진하여 국가 재정을 증대시키고 민생을 안정시켜 준다. 둘째,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중앙집권체제의 확립을 뒷받침해준다. 셋째, 물의 압력을 견딜 수 있는 제방을 만듦으로써 토목 기술의 발전을 보여준다. 넷째, 제방 축조에 동원된 빈민들에게 진휼미를 지급함으로써 빈민 구휼의 의미도 갖는다. 798년 청제를 수리할 때 14,000여 명의 인원을 동원한 것은 제방공사가 빈민에 대한 진휼의 성격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Abstract

For a long time now, natural disasters such as drought, flood, wind, and frost have been affecting agriculture. In pre-modern society, the most active coping strategies for natural disasters were the expansion and maintenance of water installations. The same was true for ancient society; there are many ancient reservoirs remaining today such as Byeokgolje in Gimje, Uirimji in Jecheon, Gonggeomji in Sangju, and Cheongje in Yeongcheon, as well as a reservoir in Yaksa-dong, Ulsan, which was revealed by an excavation survey. The irrigation area of Byeokgolje Reservoir was approximately 154㎢ in the early Joseon Period. The figure derived from the relevant hydrological research is not significantly different. Cheongje Reservoir in Yeongcheon was recorded in Gyeongsangdo sokchan jiriji (1454, Revised Geography of Gyeongsang-do) as having an irrigation area of 1.22 ㎢; this is similar to the entry in Cheongje munbu (1929, Record of Cheongje Reservoir) despite the 500-year gap between the two documents. In light of this fact, the irrigation area in the year of its construction(538) may be presumed to be little different to the later records. A construction technique by which a wooden water tank and an embankment were reinforced with tree branches, called buyeop, was recorded in Jeeon jeolmok (Regulation on Embankments) of the Joseon Period. The same technique was discovered during the excavation of the ancient reservoir. According to Jeeon jeolmok, people held a market to collect stones and woods for the building of an embankment. Indeed, markets for such materials are highly likely to have been held during the ancient period. Meanwhile, only the floodgate of the outer embankment of Byeokgolje Reservoir in Gimje can be found. Note, however, that there is a record on the floodgate of the inner embankment in Byeokgolje jungsugi (Record of the Construction of Byeokgolje Reservoir), but this needs to be verified by excavation research.  As for the significance of ancient reservoirs, they served to increase public finance and stabilize people’s livelihoods by improving agricultural productivity and promoting the cultivation of farmland; played a role in the establishment of a centralized system of government by enabling the mobilization of labor on a large scale; produced a civil engineering technique, i.e. the construction of an embankment that could endure water pressure; and, finally, were a source of work for poor people who were mobilized to carry out the construction work, as evidenced by the fact that some 14,000 people were mobilized for the repair of Cheongje Reservoir in 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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