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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경문왕계의 佛事 활동과 骨法의 의미

The Activity of Budhist Work and The Meaning of "Golbeob" during the Lineage of King Kyeong-moon in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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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경문왕계에 관한 기존 연구는 왕권강화책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 결과 신라의 쇠퇴 원인을 진성왕에서 찾았다. 이전부터 진행된 정책의 문제점이 진성왕대에 드러난 것은 아닐까? 본 논문에서는 경문왕계를 관통하는 정치세력 및 활동을 분석하여 기존 연구에서 말한 왕권강화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나아가 신라 쇠퇴의 원인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경문왕은 즉위 초 鵠寺 중창을 통해 친족집단을 원성왕계로 통합하려 하였으며, 당으로부터 책봉을 받은 후 직계를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균정계의 반발이 있었으나 경문왕은 이를 진압하고 자신의 가계를 강조하는 작업을 추진하였다. 그것이 바로 황룡사9층탑의 중창이었다. 이 공사의 책임자로 동생 위홍을 임명하고 새로운 인물을 대거 참여시켰다. 이들은 대부분 진성왕대까지 활동하였으므로 경문왕계를 관통하는 정치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9층탑의 완공 후 경문왕계는 황룡사에서 각종 법회와 의식을 개최하면서 황룡사의 위상을 부활시켰다. 이로써 중고기 동륜계가 황룡사를 중심으로 왕실의 신성화를 내세웠던 것처럼 경문왕계의 신성화가 이루어졌다. 신성화의 일환으로 경문왕계에서는 ‘骨法’을 강조하였다. 특히 여자였던 진성왕과 헌강왕의 庶子였던 효공왕의 ‘골법’을 부각시켜 왕위계승을 정당화하였다. 결국 왕실 친족집단이 分枝化한 상황에 경문왕계는 통합보다 자신들의 가계를 신성화하는데 집중하였다. 황룡사 중심의 불사와 골법을 통한 신성화는 중고기 동륜계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불교를 바탕으로 복고주의를 지향한 경문왕계는 9세기 신라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신라의 쇠퇴를 초래하였다.

Abstract

Existing studies on the lineage of King Gyeong-mun have focused on King Gyeong-mun’s policies of strengthening royal authority, and as a result, many studies wrongly point to Queen Jin-seong as the reason behind the fall of Silla. This paper examines the problems related to the strengthening of royal authority that has been discussed in existing studies, by analyzing the political power and ideology underlying of the King Gyeong-mun lineage. King Gyeong-mun, when he first rose to the throne, attempted to integrate his kin through the reconstruction of the Gok-sa(鵠寺) temple. However, he delegated his authority to his direct line of descendants after he was crowned heir to the throne by the Tang. This was met with backlash from Gyunjeong, yet King Gyeong-mun suppressed such an opposition and rather continued to work on emphasizing his lineage. Part of such effort was the reconstruction of the 9-story pagoda of Hwangnyong-sa temple. He put his brother, Wee-hong to supervise the reconstruction and appointed new personnel to participate in this endeavor. The majority of the participants influenced authority until Queen Jin-seong’s rule, throughout King Gyeong-mun’s lineage. Once the reconstruction of the 9-story pagoda was completed, the lineage of King Gyeong-mun hosted various Buddhist ceremonies and rituals at the Hwangnyong-sa temple, once again reviving its prominence. Hence, the lineage of King Gyeong-mun was made holy, just as the lineage of Dongryun pursued the sanctification of the royal family members through the Hwangnyong-sa temple in the mid-ancient period of Silla. Moreover, the lineage of King Gyeong-mun emphasized golbeob(骨法, appearance of the bone) in accordance with physical characteristics. In particular, the golbeob was accentuated when Queen Jin-seong, a woman, and King Hyogong, son of a concubine, ascended to the throne. Eventually, members of the royal family became divided, the formation of King Gyeongmun’s lineage resulted in the sanctification of the royal family members rather than their integration. King Gyeong-mun lineage’s pursuit of reactionism, which followed the policies of Prince Dongryun during the mid-ancient period of Silla, prevented them from actively responding to the changes that occurred in 9thcentury Silla society, led to the demise of the Silla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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