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 후반 월성 외곽의 공간적 재편과 그 의미 - 월지 주변과 발천 유적을 중심으로
Spatial rearrangement of the exterior of Wolseong Fortress in late 7th Century and its significance - With a focus on the sites surrounding Wolji Pond and the Balcheon St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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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月池는 문무왕 14년(674)에 처음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발굴조사 과정에서 7세기 후반 이전부터 못이 존재하였음을 알려주는 흔적이 확인되었다. 삼국사기에 보이는 3세기 중엽 용이 나타났다는 궁(월성)의 동쪽 연못은 이미 이때부터 월지의 위치에 못이 존재하였음을 뒷받침한다. 이와 관련하여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8세기대의 東池도 관심을 끄는데, 용과 연관될 뿐만 아니라 東池가 넘쳐 內殿 50여 칸이 떠내려갔다고 한다.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 월성 안팎에서 50여 칸의 건물을 떠내려 보낼 정도의 담수가 가능한 못은 월지뿐이고, 월성 외곽에서 內殿이 위치할만한 후보지도 월지 주변을 제외하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용이 나타났다는 궁의 동쪽 연못과 東池, 월지는 모두 동일한 실체로 판단하였다. 요사이 월지 서편에 위치한 건물군은 태자가 아니라 왕과 관련되어 있다는 견해가 부각되고 있다. 더욱이 월지 서편 건물군의 발굴 결과와 공간 배치 등을 면밀히 살펴보면 남북 중심축을 공유하는 3기의 중심 건물은 正殿과 便殿 등으로 사용되었음이 분명하다. 흥미롭게도 여러 자료를 통해 월지는 용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던 사실이 확인된다. 용은 잘 알려진 것처럼 제왕을 상징하며, 월지는 3세기 중엽부터 용이 출현하고 머무는 등 월지 주변은 제왕의 기운이 서린 공간으로 인식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것이 7세기 후반 문무왕이 정전을 비롯해 국정 운영과 관련한 중요한 건물을 월지 주변에 조영한 배경이 되었던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와 더불어 용이 물을 지배하는 水神으로 인식된 점도 주목하였다. 근래에 활발히 논의되고 있듯이 월지 주변을 포함해 월성 외곽 지역은 대부분 습지여서 이를 개발하려면 물을 적절히 통제하고 대지를 조성하는 작업이 필수적이었다. 월지 주변에 건물을 조영하는 것도 물을 다스리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했다. 바로 이런 과정을 거치며 물을 지배하는 水神의 면모가 용에서 국왕으로 치환될 수 있었고, 이는 정전 등을 월지 주변에 조영한 또 다른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최근 월지 서편 건물군에서 서쪽으로 250m 가량 떨어진 발천 유적에서 7세기 후반으로 편년이 가능한 전후퇴칸 형식의 건물지, 石造시설과 塼이 깔린 배수로 등 제의적 성격이 강한 유구가 발굴되었다. 이는 7세기 후반 삼국사기에 언급된 문무왕의 ‘宮闕 重修’가 궁성 내 전각의 정비는 물론이고 국가적 제의시설의 조성까지 포함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렇듯 7세기 후반에 월지 주변과 발천 일대의 공간적인 재편은 이제 국정 운영의 중심축이 월성 내부에서 월지 일대로 옮겨갔음을 일러 준다. 그와 연동하여 황룡사 남편 일대가 본격적으로 도시로 개발되기 시작하는데, 7세기 후반 월성 외곽의 공간적 재편이 갖는 의미는 여기서도 찾아볼 수 있다.
Abstract
It is generally assumed that Wolji Pond was built in 674 (the 14th year of the reign of King Munmu of Silla). However, traces indicating the existence of the pond before the late seventh century were identified during the excavation. Samguk sagi (1146, Historical Record of the Three Kingdoms) states that a dragon appeared in the pond to the east of Wolseong Fortress in the mid-third century, which suggests that a pond already existed in the area where Wolji Pond is located. In this regard, researchers also pay attention to Dongji Pond, which dates from the eighth century and is mentioned in Samguk yusa (1281,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There are also stories about the appearance of a dragon at this pond, and it is said that around 50kan* of the inner buildings of the fortress was once flooded when the pond overflowed. As a result of the surveys conducted so far, the only place in or outside Wolseong Fortress that could contain enough water to flood an area the size of 50 kan is Wolji Pond, and the only place where inner buildings of the fortress could have been located is the area close to Wolji Pond; as such, it has been concluded that the pond to the east of the fotress where the dragon is said to have appeared, namely, Dongji Pond, and Wolji Pond refer to one and the same thing. Now, some researchers believe that the group of buildings to the west of Wolji Pond is associated with a king rather than a crown prince. Furthermore, judging by the results of the excavations of the group of buildings situated to the west of Wolji Pond and their spatial layout, it seems clear that the three buildings lying along a vertical line were used for official meetings and the king's private purposes. Interestingly, it has been ascertained - through an examination of the relevant materials - that Wolji Pond was closely associated with a dragon. As the dragon symbolizes a king, and as there are many stories about the appearance of a dragon at Wolji Pond dating from the mid-third century, the areas around the pond are recognized as being associated with a king. This may be why important buildings associated with state affairs, including those used for official meetings, were built near to Wolji Pond in the late seventh century. It is also noteworthy that the dragon was viewed as a water deity. The area outside Wolseong Fortress, including Wolji Pond, mostly consisted of swampland, so much work had to be done to control the water and to form solid ground on which to build. It is thought that in the course of such work, a water deity came to be identified with a king and that the buildings used for official meetings were built near Wolji Pond. Recently, the remains of facilities possibly related with sacrificial rites, including the site of an open space under a roof supported with columns outside the original section of a building, which is assumed to date from the late seventh century, as well as stone facilities and a brick drainage were excavated at the historic site at the Balcheon Stream, about 250 meters west of the group of buildings situated to the west of Wolji Pond. This discovery may indicate that the repairs of King Munmu's royal palace in the late seventh century, which are mentioned in Samguk sagi, included the construction of state facilities for sacrificial rites and the renovation of the buildings of the royal palace. The spatial rearrangement of the buildings in the areas close to Wolji Pond and the Balcheon Stream may be interpreted as a planned relocation of the central axis of governance of the kingdom from inside Wolseong Fortress to the area near Wolji Pond. Meanwhile, the area south of Hwangryongsa Temple was developed into a town as a part of the spatial rearrangement of the areas outside Wolseong Fortress in the later seven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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