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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해자의 조사 성과와 고환경 연구와의 접점

Interface with the Survey Performance of Wolseong Moat and Palaeo-Environmental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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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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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최근까지 비교적 장기간 발굴된 월성 해자의 조사 성과를 검토하고, 인접 분야인 고환경 분석과 함께 융복합 연구로 나아갈 학술적 접점을 모색하였다. 월성은 선상지 지형의 중앙분지에서 남천에 인접하여 왕경 남편에 치우쳐 입지하며, 해자와 인근 일대는 지하수가 지표면으로 흘러나오는 선단부에서 중위면~저위면이 연속되는 지점에 위치한다. 이런 조건 속에서 해자 유적의 형성, 변화과정을 통시적 관점에서 추적해보았으며, 특정 시기나 일부 영역에 한정되어 부족한 자료에 대해서는 인문적, 자연적 경관을 제시한 고환경 분석을 활용하여 보완해 볼 수 있었다. 해자 유적 일대는 원삼국시대 후기 즈음부터 하천 범람과 습지를 피하면서 거주 및 토지 활용에 용이한 특정 지점을 따라 취락 조성이 확인된다. 삼국시대에 접어들면 월성 성벽의 북쪽 방면을 따라 수혈 해자가 굴착되는데 그 너비가 25~45m로 추정되어 동 시기 다른 해자에 비해 대규모 면적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축조 시점은 성벽의 기저부 조성 이후, 체성부 성토와 맞물려 4세기 중~후엽에 해당될 것으로 판단된다. 수혈 해자는 5세기 전엽 전후에 한 차례 보수, 정비가 이루어지는데 해자 너비-면적 차이가 특정 구간별로 극심한 데서 발생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따른 조치로 해자 바닥을 다시 굴착하여 높이가 1.2~1.5m에 달하는 목제 판자벽 시설을 일정한 폭으로 유지되게끔 설치하였고, 이런 배수체계 정비를 통해 홍수 범람이나 지하수 용출에 취약한 지형 조건에서 배수량, 유로 흐름의 관리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냈을 것이다. 삼국 통일 이후, 해자는 외부의 위협이 낮아지면서 방어 기능을 축소하는 대신, 석축 원지로 개축하여 조경 시설로서 새롭게 단장되었다. 조경 시설로 거듭난 석축 해자는 7개의 석축 원지가 중간 지점마다 설치된 입․출수구를 통해 물이 흐르도록 설계됨으로써 월성 왕궁의 북편 일대가 운치 가득한 정원 단지로 느껴지게끔 조성되었다. 점차 석축 해자는 2~4차례 개축되면서 전체 면적이 대폭 축소된다. 석축 해자가 줄어들면서 확보된 공간에는 관청 건물이 일렬로 길게 늘어서 채워졌다. 해당 시기는 월성 왕궁뿐만 아니라 신라 왕경 전 구역이 도시 개발의 절정기에 도달하면서 자연 식생 경관에서 나무를 포함한 녹지 구성이 대폭적으로 변화되었으며, 중요한 건축물들이 전반적으로 확장되고 개축되는 시기를 거쳤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인공적 변화는 유로 흐름에 의한 퇴적 환경 또한 크게 바꾸어 놓는 결과를 낳았고, 해자 일대가 대대적인 고환경 개발과 정비를 통해 자연적 조건을 극복해 나갔음을 의미한다.

Abstract

Since the Proto Three Kingdoms Period, the moat site has been identified as a settlement along certain points that are easy to live and use while avoiding river flooding and wetlands.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a Pit moat was excavated along the northern side of Wolseong Fortress, which is estimated to be 25 to 45 meters wide, indicating that it had a larger area than other moats at the same time. The construction period is believed to correspond to the mid to late 4th century, following the construction of the base of the wall, in conjunction with the construction of the body wall. The Pit moat was repaired and repaired once before and after the 5th century, to solve structural problems caused by the severe difference in moat width and area in certain sections. As a result, the moat floor was excavated again to maintain a wooden board wall facility of 1.2 to 1.5 meters in height, and the maintenance of the drainage system would have effectively led to the management of drainage and flow under terrain conditions vulnerable to flooding or groundwater elution. After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the moat was renovated as a landscaping facility, instead of reducing its defense function due to low external threats. The stone moat, which was reborn as a landscaping facility, was designed to allow water to flow through the entrance and exit gates installed at every midpoint, making the northern part of Wolseong Palace feel like a garden complex full of scenery. Gradually, the total area of the stone moat will be greatly reduced after two to four renovations. As the number of stone moats decreased, government buildings were lined up and filled. Not only the Wolseong Palace but also the Silla Wanggyeong area reached the peak of urban development, significantly changing the composition of green areas, including trees, from natural vegetation landscapes, and important buildings were expanded and renovated over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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