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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와 단국대학교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Dankook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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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해방 후 대학을 설립한 주체의 하나는 독립운동 세력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도 환국 후, 국내에서대학을 설립하고자 하였다. 임시정부는 환국 직후 내무부 산하에 정치공작대와 행정연구위원회를 설치하면서, 행정연구위회에 대학설립을 맡겼다. 신익희가 내무부장으로 그 책임을 맡았다. 신익희는 임시정부 요인들과 협의하여 ‘국민의 대학’을 설립한다는 취지아래 국민대학설립기성회를 조직하였다. 기성회는 주석 김구와 부주석 김규식을 고문, 외무부장 조소앙을 명예회장으로 하고, 회장은신익희가 맡았다. 국내의 각계 인사 40명이 이사진으로 참여하였다. 그리고 기성회 중심으로 대학설립을추진해 나갔다. 기성회에서 실무를 주도한 것은 회장 신익희와 이사 장형이었다. 장형은 군자금을 모집하며 서간도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심양에서 김홍일을 만나 ‘국내에 들어가 김구를 도우라’는 말을 듣고 귀국하여 이사에 참여하였다. 기성회는 5천만원의 대학설립 기금을 모집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때 장형이 독립운동 시기의 동지였던 박기홍의 미망인 조희재로부터 5만평의토지를 기증받았다. 그리고 이를 기본 재산으로 하여 1946년 9월 1일 국민대학을 설립하였다. 국민대학은 임시정부가 세운 대학이었다. 신익희가 학장, 장형이 이사장으로 대학을 운영하였다. 그런데 신익희가 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을 떠나 이승만측과 한국민주당에 참여하는 일이 일어났다. 장형은 이를 임시정부와 김구에 대한 ‘배신’으로 여겼고, 국민대학은 임시정부의 정신을 잇기가 어렵다고 보았다. 장형은 국민대학과 결별하였다. 그리고 임시정부와 김구의 독립정신을 계승하는 대학을 별도로 설립키로 했다. 조희재가 이에 적극 찬동하고, 80만평의 토지를 기증하였다. 장형은 이를 기반으로 대학설립을추진, 1947년 11월 단국대학을 설립하였다. 단국대학을 설립하게 된 것은 국민대학이 임시정부의 정신을이을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고, 이를 계승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 단국대학이었다. 여기에는 김구와의 관계도 작용하였다. 장형은 김구와 각별한 관계에 있었고, 김구의 노선을 지지하고있었다. 그리고 김구가 설립한 건국실천원양성소의 이사장을 맡아, 소장 김구와 함께 이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단국’이란 교명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장형은 임시정부와 김구가 추진하는 통일국가수립을 지지하였다.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야 하는데, 남북이 모두 받들 수 있는 것은 단군의 건국정신이라 보고, 교명을 ‘단국’이라고 정한 것이다.

Abstract

Since 1945, many powers of Korean Independent movement including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PGRK) were participated in the foundation of a university (or a college). Just after returning home from abroad, PGRK set up ‘A Group of Political Underground Activities’and ‘A Committee of Administration Research’. And PGRK, under the responsibility of Sin, Ik-hee,put the foundation of a university in charge of ‘A Committee of Administration Research’. Sin Ik-hee, under the aim for founding a people’s university, organized ‘An Association for the Realization of a Plan (ARP) to founding Kookmin University. ARP invited Kimkoo and Kim Kyu-sik as advisors, Tjo, So-yang as an honorary chairman, 40 society personages of the interior as directors, and Sin Ik-hee became Chairman of ARP. Sin Ik-hee as Chairman and Chang Hyoung as one of directors fully led Practical business affairs of early ARP. Chang Hyoung was a leader of an independence movement who was acted for collect war funds in the western Gando region. Since 1945, when he met Kim Hong-il on SimYang, Kim suggested him to help Kimkoo. Then he returned to Seoul and joined ARP. ARP had a plan for the foundation of the university with 50 million won as fund-raising, but the plan is not easy to be achieved. At that time, Cho Huijae, who was Park Ki-hong’s widow, donated 5 thousand pyeong(=6.013㎥) to ARP through Chang Hyoung who was a close friend of Park Ki-hong. By basic of this property, Kookmin University was founded on September 1946. Kookmin University was founded by PGRK and was managed by Sin Ik-hee as the president and Chan Hyoung as the chair director. However, Sin Ik-hee left PGRK and the Korean Independence Party and joined to the side of Rhee Syngman and Korean Democratic Party. Chang Hyoung thought that Sin’s political movement was a betrayal against Kimkoo and Kookmin University could not success the spirit of PGRK. Chang Hyoung left from managing Kookmin University, and decided to found a new university which success Kimkoo’s spirit. At the time, Cho Huijae positively agreed and donated her property(about 80 thousand pyeong) to Chang Hyoung again. Chang Hyoung tried to set up a new university within a basis of the property, and founded Dankook University on November 1947. Therefore, the foundation of Dankook University was a proof to the contrary by failure of Kookmin University as the succession of the spirit of PG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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