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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1945~50) 천안지역 정치동향의 추이와 성격

Trends and Characteristics of Political Trends in Cheonan After Liberation(19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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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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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해방 이후 정치동향에 대한 지역사례 연구로서, 충남 천안 내 변화의 양상을 통시적으로 살펴보고자 한 글이다. 해방 직후 미군의 진주와 인민위원회의 부침이라는 상황 속에서 천안지역 내 국가건설운동은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천안에서는 일제시기 유력자로 활동했던 인물들이 관료기구를 장악하고 반탁운동을 전개하는 가운데 우익세력으로 새롭게 재편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탁치정국하에서 이들은 폭력공세를통해 좌익세력을 억제하는 한편, 이승만을 정점으로 하여 세력을 규합해 나갔다. 천안지역의 우익세력은 정치적 주도권을 점차 장악해 나가게 되었지만, 이후 야기된 분화현상이 1949~50년간 진행된 두 번의 보궐선거와 제2대 국회의원 선거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리고 곧 이어 발발한 한국전쟁을 통해 다시금 좌우익간 대결이 펼쳐지는 형태로 지역사회의 정세가 변화되어 갔다. 이와 같은 천안지역의 정세변화는 거시적으로 볼 때 당시 중앙정치의 규정력하에서 그 추세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Abstract

This paper is a regional case study on post-liberation political trends and aims to examine the aspects of Cheonan, Chungcheongnam-do, in chronological order. Immediately after the liberation, the National Foundation Movement actively began to go on in Cheonan under the circumstances of the U.S. military’s station and the People’s Committee’s ups and downs. In Cheonan, a new reorganization was made by a right-wing forces, which were influential person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aking control of the bureaucratic organization and carrying out anti-trusteeship movements. And under the political situation of trusteeship, while suppressing left-wing forces through violent attacks, they rallied their forces with Rhee at the peak. The right-wing in Cheonan area gradually took over the political initiative, but the eruption has been revealed in three general elections at 1949~50. And soon after, the situation of the community has changed in the form of confrontation between left and right again through the Korean War. This change of situation in Cheonan was following the trend under the regulatory power of the central government at tha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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