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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70년대 북한고고학계의 청동기·철기시대 설정과 고조선 인식

The Setting of the Bronze and Iron Age, and the Understanding of Gojoseon in North Korean Archaeology from 1950s to 197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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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90년대 대동강문화론을 주장하면서 이루어지는 고조선에 대한 일련의 주장들은 현재 받아들이기어렵지만, 그 이전의 연구 성과는 당시로서 나름의 고고학적 근거를 가지고 개진된 연구들이었다. 특히 북한학계는 1970년대 고고학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고조선의 역사상을 보다 구체화하고자 하였으며, 이는 곧 고조선 요동중심설을 고고학적으로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 배경에는 해방 후 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금석병용기의 극복과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의 설정이라는 고고학적 연구성과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50~60년대는 북한 역사학·고고학 분야 연구의 황금시대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따라서 당시 북한고고학계에서 고조선 요동중심설을 주장하는 논리적 근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고고학적 연구성과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 글에서는 고고학적인 관점에서 청동기시대부터 고조선사 인식까지 50~70년대의 북한고고학계의 논리적 근거를 정리 및 검토하였다.

Abstract

A series of arguments made while advocating the theory of ‘Daedonggang Culture’ in the 1990s on North Korea’s Gojoseon research are currently difficult to accept, but previous research on Gojoseon conducted before then had its own archaeological basis at the time. In particular, in the 1970s, the North Korean academia tried to further refine the historical image of Gojoseon based on the achievements of archaeological research. The purpose was to archaeologically establish the theory of ‘Gojoseon is located in the Liaodong area’. In the background, it was possible because archaeological research results such as overcoming ‘the Chalcolithic Period’ presented by Japanese scholars and establishing the Bronze Age and Iron Age were supported during the 50s~60s. Therefore, it is evaluated that the 50s and 60s were the golden age of research in the field of North Korean history and archaeology. So, it is important to review the archaeological research results of that time in order to understand the logical basis for claiming the theory of ‘Gojoseon is located in the Liaodong area’ in the North Korean at that time. From an archaeological point of view, this article aims to summarize and review the logical basis of the North Korean archaeological community in the 50s and 70s from the Bronze Age to the perception of Go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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