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肖古王 24년 황색 깃발 사용에 대한 검토
Study of the Use of Yellow Flag in Year 24 of King Geunchogo’s Re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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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百濟本紀에 의하면 近肖古王은 재위 24년에 大閱을 하면서 깃발을 모두 황색으로 통일시키는조치를 취하였음이 확인된다. 이에 대하여 선행 연구는 일종의 황제 의식을 나타낸다거나, 혹은 군대 지휘체계의 일원화를 반영한다고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견해를 해당 사례에 대입해 보면, 적합하지 않거나 반대되는 요소들이 적잖이 확인되어 재고의 여지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改正朔 易服色’ 관념이 주목된다. 이 관념은 특정 정치체의 정통성 및 정체성을 확립함과 관련된 성격을 갖고 있다. 그리고 현실에 실현하기 위한 방식으로 특정한 색상을 선택하여 각종 기물에 일률적으로 대응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는데, 깃발 역시 포함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백제의 사례 역시 여기에 영향을받아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당시의 백제는 낙랑·대방군을 통한 중국 여러 왕조와의 교류 및 이를 통해 유입된 인적자원을 통해 이 관념을 이해하고 실현함에 필요한 사상체계를 숙지하였던 상태라 판단된다. 또한 4세기 중반은 장기간 진행되어온체제 개편의 작업이 일정한 성과를 보임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형성된 독자적 정체성 역시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기 시작한 때였다. 그리고 근초고왕 24년은 정통성의 발원처를 공유함과 동시에, 한반도 지역에 대한 패권을둘러싸고 갈등을 벌였던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시점이었다. 백제는 이러한 성과를 상징적으로 장식하기위해 ‘改正朔 易服色’ 관념을 수용하여 깃발의 색상을 황색으로 통일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 魏晉·南朝 및 五胡十六國·北朝 사이에서는 ‘改正朔 易服色’ 관념을 실현하는 방식에 차이가 확인되는데, 백제는 후자와 더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당시 백제는 낙랑·대방군 출신 유민이나 前燕의 東夷校尉를 통해 五胡十六國의 정보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해당 관념의 인지 시점과는 별개로, 그것을 실제로 실현시킴에 있어서는 五胡十六國이 취한 방식이 보다 직접적인 참고 사례로 작용하였을 가능성을고려해 볼 수 있다.
Abstract
According to ‘Baekjebongi’ of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Samguksagi), King Geunchogo took action for unifying all flags into yellow, inspecting the troops in Year 24 of his reign. The preceding studies understand that this represents an emperor ritual or reflects the unification of the military command system, concerning its significance. However, to scrutinize various materials, it is not appropriate to put the conventional view into the case or quite a few opposing elements are found. Thus, there is room for reconsideration. Attention is drawn to the concept of the ‘reform of the calendar and color,’ which has long been in fashion in the East Asian region since established in the Han Dynasty. This is characteristically used for the establishment of the identity of a particular political body. Moreover, to realize this in reality, a method to choose a specific color and respond uniformly to various articles, and the flag is also included here. This characteristic suggests that the case in Baekje also was affected by the concept. It is judged that Baekje was already well aware of the system of thoughts to understand and realize the concept from long ago through exchanges with China, focused on Nakrang and Daebang States and human resources flowed in through this. Also, it was time when there was a certain reorganization of the national system by Baekje, long conducted in the mid-4th century and when the independent identity formed in the process was recognized internationally. Moreover, Year 24 of King Geunchogo’s reign was the time when a good cause for carrying out a symbolic declaration with the meaning embracing the above performance was prepared for according to winning the first war with Goguryeo, conflicted in seizing hegemony over the Korean peninsula, sharing the source of legitimacy. Baekje unified the color of the flag, accepting the concept to symbolically decorate this. In addition, the yellow color was chosen because the Goguryeo’s crack troops defeated at the time used a red flag. Meanwhile, in the period centered on the mid-4th century, between the Wei-Jin and Northern& Southern Dynasties and 5hu (Five Barbaric Tribes) 16 guo Dynasty/Northern Dynasty of China, there was a difference in realizing the concept. Baekje had aspects more similar to the latter. Furthermore, it is judged that Baekje might understand information about 5 Hu 16 Guo Dynasty through migrants from Nakrang and Daebang States or Former Yan’s Northern Qi Dynasty. Thus, separately from the problem when the notion was recognized, it is noted that as for King Geunchogo’s action in Year 24 of his reign, the action, taken by 5 Hu 16 Guo Dynasty might act as a more direct reference 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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