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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현직교원 재교육의 양상

Aspects of the Teacher Training from 1905 to the Japanese Colonization Era(1910~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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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우리나라에서 근대교원교육이 시작된 이래 현직 초등교원 재교육의 양상을 밝힌 것이다. 우리나라 근대 교원교육사에서 현직교원 재교육은 교원강습회라는 명칭으로 1905년부터 관 주도, 그것도 일제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현직교원 재교육은 본질적으로 일제의 교육정책을 보급・선전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재교육 또는 보충교육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그리하여 1905년~일제강점 초기에는 일본어와 일본식 교육학 보급에, 1920년대 후반 이후에는 직업과강습회, 농업강습회, 졸업생지도강습회 등 사실상 농업 노동에 불과한 직업교육에, 일제 말에는 황국신민체조강습회, 교련강습회 등 ‘황국신민의 연성’에 중점을 두고 이루어졌다. 일제 말에는 현직교원 재교육 전용의 상설기관이자, 교육계 지도층의 연성 시설로서 교학연수소가 설립되었다. 교학연수소는 기숙사 입소를 원칙으로 하였고 기숙사에서의 단체생활 자체를 연수 내용의 일부로서 중시하였으며,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기상 시간부터 취침 시간까지 강의, 교련, 체조, 무도, 농사일 등으로 꽉 짜인 일과와 군대식 생활 규율을 갖추고 있었다. 설립 초기에는 초등학교교장, 시학, 사범학교 교원이 주로 입소하였고, 뒤로 가면서 중등교원도 입소하여 연수를 받았다. 조선총독부는 1943년 교학연수소를 폐지하고, 연성 대상을 교원뿐 아니라 칙임관 이하 고등관으로 확대하여 새로 지도자연성소를 개소하였다. 이에 따라 교학연수소의 기능은 지도자연성소 내 교학연수부로 흡수되었다. 교학연수소, 지도자연성소는 일제 말 ‘황국신민 교육’의 철저가 학교교육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 초등학생에게까지 ‘황국신민의 연성’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국가총동원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장치를 교육 현장에서도 갖추어나갔던, 한 실례라고 할 수 있다.

Abstract

This thesis examines the aspects of the teacher training from 1905 to the Japanese colonization era(1910~1945). In Korea, the teacher training has been instituted led by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since 1905.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actively used the reeducation of teachers to improve their ability to propagate the government policies. So, the reeducation of the teachers had focused mainly on the Japanese language education or the vocational education until the 1920s, and on the universal military training or ideological education for the ordinary people of the colonized Chosŏn after the wartime system period.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established a training center, called Gyohagyeonsuso(敎學硏修所) in 1938. It was a training center which was to make teachers into a Loyal Citizens of the Japanese Empire. The characteristics of teacher training that took place in this center, in the end of Japanese colonization era(1938~1945), is as follows. First, the training teachers had to stay in the special center equipped with the residential facilities for a period of training time. Second, a dormitory that is strictly regulated as military discipline itself was one of the key teacher training contents. Third, it included military training in teacher training. That is, Gyohagyeonsuso(敎學硏修所) was the device for being the national mobilization in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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