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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만주 한인과 중국인의 토지분쟁 양상과 변화 -達貝溝村 토지분쟁을 중심으로-

Patterns and Changes in Land Disputes between Koreans and Chinese in Manchuria during the 1920s: Focusing on the Dabeigou Village Land Disp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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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연구는 만주 達貝溝 지역의 사례를 통해 1920년대 남만주 한인과 중국인 간의 토지분쟁 양상과 변화를 살펴보았다. 1915년 滿蒙條約의 체결로 일본이 만주에서 商租權을 확보하면서 한인의 남만주 이주와 토지 점유가 본격화되었고, 중국인 지주들이 한인에게 토지를 임대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1926년 三矢協定 이후 奉天省 정부는 한인의 이주와 토지점유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이와 함께 소작료 미납 문제로 한인과 중국인 지주 간의 분쟁이 빈번해졌고, 일본영사관의 개입으로 한인과 중국인의 토지분쟁은 외교 문제로 확대되었다. 1928년 이후 만주지방행정당국은 일본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한인의 이주와 토지점유에 대한 단속을 약화시켰다. 반면 한인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이주하고 토지를 점유했다. 達貝溝에서는 소작료 문제로 한인과 중국인 사이에 폭력사태가 빈번히 발생했고, 한인들은 일본경찰의 지원을 받아 유리하게 사태를 해결했다. 1931년 만주사변 직전, 達貝溝의 한인들은 만주행정당국의 명령을 무시하고 점유지역을 늘려나갔으며, 일본은 경찰을 파견하여 이를 방관하고 보호했다. 이 과정에서 한인들의 적극적인 이주와 개간이 이루어지며 중국인들과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達貝溝 분쟁을 보면 만주 한인이 처한 현실과 이들이 친일을 선택하는 불가피한 조건들이 잘 나타나 있다. 한인들은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줄 수 있는 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힘이 현실적으로 약한 상황에서 일본에 의존하고 중국을 배척하는 것은 당연한 생존의 논리였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patterns and changes in land disputes between Koreans and Chinese in southern Manchuria during the 1920s, focusing on the case of Dabeigou in Manchuria. Following the signing of the Treaty on Southern Manchuria and Eastern Inner Mongolia in 1915, Japanese subjects were permitted to lease or own land in South Manchuria and Eastern Inner Mongolia for constructing buildings for various commercial and industrial uses or for farming. Consequently, Korean migration and land occupation in southern Manchuria began in earnest. Conflicts arose as Chinese landlords leased land to Korean tenants. After the conclusion of the Mitsuya Agreement in 1926, the Fengtian provincial government intensified its crackdown on Korean migration and land occupation. Concurrently, disputes between Korean tenants and Chinese landlords over unpaid rent became frequent, escalating into diplomatic issues with the intervention of the Japanese consu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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