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5~6세기 ‘奴’의 성격과 신라의 ‘奴人’

The Character of ‘No’ and ‘Noin’ of Silla periods in the 5th~6th Centuries

0

조회

0

다운로드

0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삼국시기 노(奴)의 의미는 지금까지 노비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고구려의 노객(奴客)이나 신라의 노인(奴人)은 이같은 천(賤)신분과는 차별적인 존재들이다. 노객은 원래 위진남북조시기 관인(官人)지배층에 예속된 객적(客的) 존재로 고구려의 노객 역시 여기에 착안한 것이다. 그런데 「모두루묘지명」에서 노객과 함께 관객(官客)이란 표현도 함께 쓴 것을 보면 모두루(牟頭婁)는 관은(官恩)을 통해 주군(主君)-종신(從臣)의 관계를 맺고 있던 인물이다. 한편 1~3세기 중국사서에 전하는 하호(下戶)의 실상은 노복(奴僕) 또는 노객과 같은 처지였으며 특히 노객은 제가(諸加) 출신 좌식자(坐食者)의 식읍경영에 관련된 하호들을 지칭한다. 따라서 5세기 고구려에서 노객은 귀족들의 봉지(封地), 식읍의 운영에 관여했던 가신이나 경작민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고구려의 노객은 노객인(奴客人)의 단계를 거쳐 신라에서 노인으로 정착되었다. 따라서 신라 노인 역시 비신라계 주민이거나 왕경인(王京人)에게 예속된 지방민이 아니라 삼한(三韓) 하호 출신의 하층민이다. 노인이 고구려 유인(游人) 또는 백제의 귀인(歸人)과 달리 예속성이 강한 집단으로 취급된 것은 축성과 같은 천역(賤役)에 종사한 계층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관인층에 예속된 노인은 수례부역(隨例赴役)에 따라 주가(主家)의 토지 경작이나 부역을 대신 부담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읍락 수장층에 예속된 하호의 처지와 유사하지만 국가권력이 매개된 지배방식이라는 점에서 이전의 관행과는 차별적이다. 따라서 노인의 역역수취에서 기존의 읍락공동체의 유제(遺制)가 일부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들은 국가에 의해 파악된 주민들로 5~6세기 신라의 대민지배 방식의 변화 속에서 등장한 사회계층이다.

Abstract

The native term, ‘no’, used in the period of the Three Kingdoms has been so far considered meaning slaves. But ‘nogaek’ in Kokuryo and ‘noin’ in Shilla were different from people of the humble class. ‘Nogaek’ originally meant people who were a guest but subordinate to officials of the ruling class in the period of Wi, Chin and the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This was also true for ‘nogaek’ in Kokuryo. In 「Moduru's epitaph」, by the way, not only term, ‘nogaek’, but also another, ‘gwangaek’ are appeared. Moduru was a person who made a master-servant relationship with an official who benefited him. Meanwhile, ‘haho’, a term found in Chinese historic books of the 1st to 3rd centuries meant people whose social position was same as that of ‘nobok’ or ‘nogaek’. Especially, ‘nogaek’ engaged in feudal lands that were owned by learned people of the boble class who didn't participate in production, so-called ‘jwasikja’. In Kokuryo of the 5th century, thus, ‘nogaek’ indicated people who were a retainer or tiller assuming the management of feudal lands owned by people of the noble class. ‘Nogaek’ in Kokuryo later called ‘nogaekin’ and then became ‘noin’ in Shilla. ‘Noin’ was neither from other regions than Shilla nor rural people who were under direct control by people of the kingdom's capital. Rather, ‘noin’ was people of the low class who originated from ‘haho’ of the Three Han Nations. Unlike migrants from Kokuryo or defectors from Baekje, ‘noin’ was considered the group of people who were strongly subordinate. This is because they engaged in mean jobs like fortification. Among people belonging to ‘noin’, those who were subordinate to officials of the ruling class cultivated the soil or provided labor in favor of their master in accordance with a compulsory service system, or ‘surye buyeok’. In this sense, ‘noin’ was similar to ‘haho’ who was governed by the rural head. But unlike before, the former was under rule in which the state power intervened. How ‘noin’ performed compulsory services had some of conventions that had been practiced by rural community people. Nevertheless, however, ‘noin’ was a social class that emerged as Shilla changed its way of ruling people in the 5th to 6th centuries and whose members were formally identified by the state.

참고문헌 (55)

  1. 강종훈, "5세기 후반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선. in: 한국 고대 사국의 국경선" (2008), 서경문화사
  2. 경철화, "염모묘지와 중원고구려비", 고구려연구, 10 (2000)
  3. 고경석, "삼국 및 통일신라기 노비에 관한 고찰", 한국사론, 28 (1992)
  4. 김광수, "고구려 전반기의 ‘가’계층", 건대사학, 6 (1982)
  5. 김영심, "6~7세기 삼국의 관료제 운영과 신분제- 衣冠制에 대한 검토를 기반으로 -", 한국고대사연구, (54), pp.85~138 (2009), 한국고대사학회
  6. 김창석, "新羅 中古期의 奴人과 奴婢-城山山城 木簡과「鳳坪碑」의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고대사연구, (54), pp.43~84 (2009), 한국고대사학회
  7. 김창석, "왕경인의 소비생활과 교역", 신라 왕경인의 삶 -신라문화제학술논문집, 28 (2007)
  8. 김철준, "고구려 · 신라의 관계조직의 성립과정. in: 이병도박사화갑기념논총" (1956)
  9. 김철준, "한국고대사회연구" (1975), 지식산업사
  10. 김태식, "한국 고대 사국의 국경선" (2008), 서경문화사
  11. 김한규, "한대 막부의 기능", 한국문화연구원논총, 44 (1984)
  12. 김현숙, "고구려의 영역 지배 방식 연구" (2005), 모시는 사람들
  13. 노중국, "한국고대사회와 울진지방" (1999), 울진군·한국고대사학회
  14. 노태돈, "고구려사연구" (1999), 사계절
  15. 박순발, "한국 고대사에서 종족성의 인식", 한국고대사연구, (44), pp.5~19 (2006), 한국고대사학회
  16. 박인호, "溫達을 통해 본 6世紀 高句麗 貴族社會", 한국고대사연구, 36, pp.231~256 (2004), 한국고대사학회
  17. 박종기, "韓國 古代의 奴人과 部曲", 한국고대사연구, (43), pp.129~168 (2006), 한국고대사학회
  18. 서영대, "고구려 귀족가문의 족조전승", 한국고대사연구, 8 (1995)
  19. 서영대, "고구려 평양천도의 동기 - 왕권 및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의 강화과정과 관련하여 -", 한국문화, 3 (1981)
  20. 서의식, "6∼7세기 신라 진골의 가신층과 외위제", 한국사연구, 107 (1999)
  21. 徐 毅植, "韓國 古代國家의 二重聳立構造와 그 展開", 역사교육, (98), pp.169~204 (2006), 역사교육연구회
  22. 선석열, "「삼국사기」 신라본기 초기기록 문제와 신라국가의 성립", 박사, pp.1996
  23. 辛聖坤, "東晉시기 部曲·兵戶의 구성과 部曲主의 성격", 중국사연구, 24, pp.79~118 (2003), 중국사학회
  24. 양완철, "한대 노동형에 대하여; 한대 사천형에 관한 고찰. in: 한대사연구" (2009), 동아대출판부
  25. 윤선태, "신라의 역록과 직전-녹읍연구의 발전을 위한 제언", 한국고대사연구, 13 (1998)
  26. 이공범, "남조의 문생·고리", 成大論文集, 4 (1959)
  27. 이기백, "신라정치사회사연구" (1974), 일조각
  28. 이문기, "신라병제사연구" (1987), 일조각
  29. 이성규, "중국의 분열체제모식과 동아시아 제국", 한국고대사논총, 8 (1996)
  30. 李榮薰, "《花郞世紀》에서의 奴와 婢 - 三國時代 身分制 再論 -", 역사학보, 176, pp.1~40 (2002), 역사학회
  31. 이용현, "한국고대목간연구", 박사, pp.2000
  32. 이인재, "夫餘·高句麗의 食邑制-三國志 東夷傳을 中心으로-", 동방학지, (136), pp.1~36 (2006), 국학연구원
  33. 이인철, "한국 고대사회에서 노비와 노비노동의 역할", 한국고대사연구, 29, pp.151~190 (2003), 한국고대사학회
  34. 고구려의 대외정복 연구, "이인철", 백산자료원, ~ (2000)
  35. 임기환, "고구려 정치사 연구" (2004), 한나래
  36. 임병덕, "진한의 노비와 형도", 박사, pp.1994
  37. 장창은, "『三國史記』 地理志 ‘高句麗故地’의 이해방향", 한국학논총, 33, pp.209~241 (2010), 한국학연구소
  38. 장창은, "신라 자비-소지왕대 축성, 교전지역의 검토와 그 의미 -소백산맥 일대 신라, 고구려의 영역방향과 관련하여-", 신라사학보, 2 (2004)
  39. 전덕재, "신라의 왕경과 지방, 넘을 수 없는 경계", 역사비평, (65), pp.19~38 (2003), 역사문제연구소
  40. 전미희, "노비제의 성립과 골품제, 신라 골품제의 성립과 운영", 박사, pp.1998
  41. 전영섭, "중국중세 신분제 연구" (2001), 신서원
  42. 趙法鍾, "신라왕권과 노비제", 신라문화, (22), pp.327~346 (2003), 신라문화연구소
  43. 조법종, "삼국시대 신분제연구", 박사, pp.1995
  44. 조상현, "고구려 '遊人'의 성격 검토", 한국고대사연구, 32, pp.259~292 (2003), 한국고대사학회
  45. 주보돈, "韓國 古代 村落史硏究의 進展을 위하여-新羅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연구, (48), pp.5~49 (2007), 한국고대사학회
  46. 주보돈, "금석문과 신라사" (2002), 지식산업사
  47. 주보돈, "신라 지방통치체제의 정비과정과 촌락" (1998), 신서원
  48. 지승종, "한국 고대사회의 노비의 창출과 이전", 한국의 사회와 역사 (1991)
  49. 최의광, "{三國史記} {三國遺事}에 보이는 新羅의 ‘國人’記事 檢討", 신라문화, (25), pp.271~309 (2005), 신라문화연구소
  50. 한국고대사연구소,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1-3" (1992)
  51. 堀敏一, "中國古代の身分制 -良と賤-" (1987), 汲古書院
  52. "勞幹, 跋高句麗大兄冉牟墓誌兼論高句麗都城之位置, 歷史言語硏究所集刊 11, 1944; 勞幹學術論文集󰡕甲編上冊, 藝文印書館, 1976", ~ (1976)
  53. 武田幸南, "牟頭婁一族と高句麗王", 朝鮮學報, 99 (1981)
  54. 濱口重國, "唐王朝の賤人制度" (1961), 京都大學東洋史硏究所
  55. 李成市, "蔚珍鳳坪碑の基礎的硏究", 史學雜誌, 98(6) (1989)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8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