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말여초 김해지역의 對中國 해상교섭
A study on the maritime contacts between the Gimhae(金海)-region and Chinese-Dynasties during the Silla-Dynasty(新羅)-last period & Goryo-Dynasty(高麗)-early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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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나말여초 김해지역의 대중국 해상교섭에 대한 양상과 기반, 그 주도세력과 함께 전개형태 및 변동과정을 분석하였다. 김해지역은 동남연안의 해로로 직결되는 낙동강하류에 위치한 지리환경을 활용하여 나말여초에도 후당 등 중국지역과 해상교섭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에도 선박이나 항해 전문인력 및 항해술, 그리고 항로 등과 같이 다양한 내적 기반과 조건을 확보하여 후당 등 중국과 해상교섭을 전개하였다. 특히 경애왕 재위 4년 3월에는 金州司馬 李彦謨가 중국 登州로 파견되는 등 후당과 직접적인 해상교섭을 지속하고 있었다. 이 당시 해상교섭은 진성여왕 말~효공왕 초기부터 김해지역의 지방세력으로 등장한 金仁匡과 그를 이은 蘇(金)忠子․律熙 형제가 주도세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이 지낸 諸軍事職이나 明義將軍이 후당에서 임명 또는 추인되거나 중국의 영향으로 자칭한 관작이라는 점 등에서 알 수 있다. 나말여초 김해지역은 대중국 해상교섭을 독자적으로 전개하면서도 신라조정이나 康州의 王逢規세력과 연계하여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강주 및 신라조정과의 연계는 金州司馬 李彦謨가 權知康州事 왕봉규와 함께 나란히 후당으로부터 관작을 받고 신라의 登州知後官을 겸직한 사실, 해상교통로에서 강주와 김해지역의 입지적 조건, 소충자․율희 형제의 신라조정과의 우호적 관계 등에서 확인된다. 김해지역의 해상교섭은 후삼국의 쟁패과정에서 김해지역 내부의 정치적 동향과 함께 해상교통로의 안정적 확보 여부에 따라 변동과정을 겪었다. 경명왕 4년(920) 후백제 견훤의 進禮郡 공격 때 김해지역의 해상교섭도 일시적 타격을 입기도 하였으나, 곧 회복되었다. 그러나 견훤이 서․남해연안의 중요 거점지역들을 후백제의 영향권역으로 재편한 경순왕 2년(928) 5월경부터 같은 왕 9년까지 크게 위축되는 등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러다가 고려 태조가 재위 23년 김해를 臨海縣으로 군현의 위상을 강등하는 동시에 排岸使라는 임시 관리를 파견하면서 김해지역의 대중국 해상교섭도 크게 위축되었다. 김해지역의 대중국 해상교섭은 경순왕 때 중국 선진문화의 수요층과 그 물적 자원이 경주에서 개경으로 옮겨가면서 이미 상실하여 정치․문화적 주변부로 전락하게 되었던 것이다.
Abstract
This case study aimed at analysis of the maritime contacts between the Gimhae-region and Chinese-Dynasties during the Silla-Dynasty-last period & Goryo-Dynasty-early period. the contents are pattern & base & leading figures & progressing form & changing process of a maritime contacts. The Gimhae-region is located in the Lower-Nakdong-River(洛東江下流) there can connect a seaway of the East-Sea(東海) & South-Sea(南海). these geographical environment was possible to evolve a maritime contacts between the Gimhae-region and After-Dang-Dynasty(後唐) during the Silla-Dynasty-last period & Goryo-Dynasty-early period. At this time, the leading figures of a maritime contacts were Gim-Ingwang(金仁匡) & the brothers of So-Chungja(蘇忠子)․So- Yulhui(蘇律熙). a maritime-progressing form of the Gimhae-region has on their own deployment, and has be linked with the Silla's government & Wang-Bonggyu(王逢規) of the Gangju(康州)-region. Since then, a maritime negotiations of the Gimhae-region has been weakened during the war's time of After-Three-Kingdoms(後三國). in particular, its position has been almost lost after the First-Emperor(太祖) Wang-Geon(王建) of Goryo-Dynasty(高麗) then the capital has been transferred into the Gaegyeong(開京) -region at the Gyeongju(慶州)-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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