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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묘제 변화 배경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Change of the Tomb System and its Causes in the Age of Three-Kingdom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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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일반적으로 묘제는 인간이 만든 문화 중에서 가장 보수적이어서 쉽게 변화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이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삼국시대의 묘제는 변화 속도가 빠르고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묘제가 다양하다는 것은 고구려, 백제, 신라 외에 가야, 낙랑이라는 다섯 국가가 서로 영역을 다투고 있는 탓도 있지만 묘제 변화 속도가 다른 시대에 비해 빠르게 전개된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배경과 삼국시대 묘제를 요약 정리하기 위해 각국의 중요 묘제를 살펴본 결과 독자적인 묘제도 있지만 공통적인 묘제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횡혈식석실묘는 시기를 달리 해서 모든 국가에서 채용하고 있어 내부 발전에 의해 묘제가 변화되었다고 보기 보다는 외부 영향에 의해 묘제가 변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외에 삼국시대 묘제 변화가 다른 시대에 비해 빠르게 전개된 것도 묘제의 보수성을 고려할 때 자체 발전보다는 외부 영향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래서 삼국시대 묘제 변화 배경에 대해 전파론적 관점으로 조명해 보았다. 전파에 의한 묘제 변화는 8가지 요인에 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첫째 고구려 횡혈식석실분은 다실묘와 단실묘가 있으나 다실묘의 대표적인 안악 3호분의 경우 동수와 같은 외국 망명자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번째 안악 3호분과 같은 다실분에서 강서대묘와 같은 단실분으로 변화되는 것은 종교(도교)의 영향이 강하게 작용했다. 세번째 백제 적석총은 온조와 같은 정치집단 이주에 의해 묘제가 변화된 것으로 문헌기록에 의해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네번째 백제의 횡혈식석실분의 도입은 한강 유역을 둘러싸고 고구려와 백제와의 치열한 전쟁에 의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섯째 무녕왕릉과 같은 전실분은 사신 활동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외에 가야의 수혈식석곽묘는 무역활동에 의해 목곽묘에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을 검토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문헌기록에 혼인 관계 기사에서 신라의 횡혈식석실분은 혼인에 의해 도입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Abstract

Generally, Now that the tomb system is one of our cultural inherits that is most unlikely to be subject to change, the government has had difficulty in changing the current system despite its endless efforts. A close look at Korean history reveals that the tomb system underwent revision most rapidly during the period of Three-Kingdom Korea. Given this, this paper aims to find what forced the tomb system of the age of Three-Kingdom Korea to change at such a fast speed. As a result, it has been found that the tomb system was so conservative that its change was accelerated by the direct introduction of other systems. To reach this conclusion, the following hypothesis was first set up: the change of the tomb system caused by such factors as an exile of a political group, immigration of refugee groups, trade, wars, ambassadors, marriage, and religions. Efforts were made to test this hypothesis through the examination of archaeological data and relevant literature. In addition, it has been discovered that the tomb system was most rapidly modified when such a movement was led by the high-class people rather than the middle-class people. This seems to suggest that the best way to change the current burial system of the dead in short time is to urge the high-class leaders to change the burial-oriented tomb system.

참고문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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