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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항공의 도입과 대구(大邱)의 입지

Daegu’s Position during the Introduction of Aviation in the 192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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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1920년대 일제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상설의 형태로 조선에 항공을 도입하고자 했다. 이 시기 지속적인 관심을 받았던 도시 가운데 대표적인 곳은 대구이다. 1920년 일제가 항공대를 증강하면서 제6항공대대를 조선에 설치하려 했을 때, 대구는 주요 후보지로 거론되었다. 이때 대구는 항공부대의 유치에 실패했는데, 향후 조선과 일본을 연결하는 항공로의 개설시 비행장이 건설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탈락 요인 중 하나였다. 당시 항공로 개척의 일환으로서 시행된 각종 연락비행에서 대구는 대한해협을 종단하는 기착지로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대구부 남쪽에 조성된 제80보병연대의 연병장은 비행기의 이·착륙에 적합한 여건을 갖췄다고 판단되어 임시 착륙장으로서 자주 활용되었고, 그 결과 비행장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그런데 1920년대 후반 민간에서의 정기항공이 가시화되자 대구 대신 울산에 비행장을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했다. 민간의 비행기는 대한해협 일대에 설정된 요새지대를 우회해야 하는 지침으로 인해 해협 종단 과정에서 긴 거리로 해상을 비행해야 했다. 초보적 수준의 항공운송에서 불시착할 수 없는 해상을 오랫동안 비행하기란 부담이었다. 일제는 해안과 가까운 울산에 불시착륙장을 설치하기로 했고, 이곳은 1928년 정식 비행장으로서 준공되었다. 대구의 비행장 유치 실패는 도시의 규모나 다른 교통수단과의 연계 등의 교통수요가 아닌 만주와 일본을 연결하는 항공로를 어떻게든 개통하려는 판단의 결과였다. 이처럼 대구의 사례는 1920년대 항공의 도입이 조선의 편리 내지 발전 도모를 위한 시설 구축의 목적보다 일제의 팽창 욕구에 따라 추진되었음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Abstract

In the 1920s, the Imperial Japanese government aimed to introduce aviation not as a temporary event, but as a permanent feature. During this period, Daegu was one of the representative cities shed with a constant spotlight. In 1920, as Imperial Japan sought to station the 6th Battalion to reinforce its aviation corps, Daegu was suggested as a major candidate. However, the plan to host the aviation corps failed. One contributing factor was the anticipation of constructing an aerodrome in establishing a future air route connecting Korea and Japan. At the time, during liaison flights conducted to develop potential air routes, Daegu was considered as a crucial stop crossing the Korea Strait. The training ground of the 80th Regiment was temporarily utilized as a landing pad, as it met the conditions for aircraft takeoffs and landings, and was therefore recognized as an aerodrome. However, in the late 1920s, as civil regular aviation flights began to take shape, an opinion emerged for constructing an aerodrome in Ulsan rather than Daegu. Civil aircraft needed to cover long distances over the sea due to the guideline which required them to bypass the fortified areas near the Korea Strait. For early air transport, flying for extended periods over the sea, where emergency landing was impossible, posed challenges. As a result, Imperial Japan decided to establish an emergency landing pad in Ulsan, which was nearer to the shoreline, and the construction of a formal aerodrome was completed in 1928. The failure to establish an aerodrome in Daegu was due to a judgment to open an air route between Manchuria and Japan, rather than considerations of cities’ sizes or their connections to other transportations. Thus, the case of Daegu shows that the introduction of aviation in the 1920s was driven more by Imperial Japan’s ambition of expansion, than a desire to construct infrastructure for the development or convenience of Colonia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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