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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통제영 선단의 탑승 동태와 운용

Boarding Movement and Operation of the Tongjeyoung Fleet in the Late Jose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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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수군 운영의 교두보였던 통제영은 영하에는 본영군과 산성군, 중영군으로 편제되었고, 8전선 선단의 토대 위에 구축되었다. 그 중 전력의 핵심인 8전선과 부속선의 탑승원은 수조와 실전의 투입을 위해 편성되었다. 17세기 후반 선단이 구성된 이후, 18세기 초반의 수군 개혁과 중엽의 양역 변통을 거치면서 승선원의 정액도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統營誌를 비롯한 다수의 사료를 검토, 대조하였다. 지휘부의 주요 將官은 좌선을 필두로 다양한 역할을 분담했지만, 통사의 재량권이 부여된 대변군관이나 별무사군에서 주로 충원되었다. 특히 船將 보직자의 경우에는 현지인 출신으로서는 최상위직인 山城中軍에 오르는 요직이 되기도 하였다. 이들에 대한 대우는 중앙 조정에서 파견된 裨將이나 三學의 최상층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나중 재지 무반 세력의 형성을 이끄는 차상위 지위는 유지되었다. 한편 수군 전력의 기반인 군졸은 전투부와 운항부 외에 비전투원인 의장부와 형행부도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사부와 화포수는 18세기 중반 이후의 정액이 19세기 말엽까지 지속되며, 포수와 함께 다른 병종에 비해 우대 받았다. 아울러 18세기 후반 이후 운항부 요원과 더불어 이들이 증액된 것은 전선의 대형화나 화기 체계의 변모와도 연계된 것으로 보인다. 기함인 좌선이나 차지휘선인 이선의 탑승원이 400~700명 내외에 이른 것은 통제영의 우월적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영선의 탑승원은 7전선과는 다른 輪番制로 운영되었고, 방료도 약간 낮은 수준이었다. 위와 같은 논의와 검토 아래에서 19세기 중반 이후의 ‘통제영수군군안’의 분석을 통하여 일정 부분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곧 주력 전선의 하나인 부선과 그 예하의 병선 및 사후선의 승선 실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승선원의 대다수는 고성현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영하읍의 특색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그간 이 부문 연구에서 소흘하게 다뤄진 수군의 동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향후 조선 수군 운영의 전체상을 조망하는 데 도움을 갖고자 한다.

Abstract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Tongjeyoung in the bridgehead of naval operations was established as Bonyeong-gun (本營軍), Sanseong-gun (山城軍), and Jungyeong-gun (中營軍) at below military camp, and was built on the foundation of 8 Warships Fleet. Among them, the boarding members of the 8 warships and the subordinate ship, the core of the fighting power, were organized for the naval training and the actual battle. After the formation of the fleet in the late 17th century, the naval forces reform was established in the early 18th century, going through the military service-adaptability in the mid-18th century. A number of historical materials, including Tongyeongji (統營誌), were reviewed and contrasted to examine the current status of this process. The command's chief officer shared a variety of roles, starting with the flagship, but were mainly recruited from the Daebyeongunguan (待變軍官) or Byeolmusa-gun (別武士群), which were given the discretion of the governor. In particular, the commander of the ship was appointed to the top rank of Sanseongjunggun (山城中軍), a local official. The treatment of them did not reach the top level of the military commanders (裨將) or Samhak (三學) subjects, but the second-highest position was later maintained, leading to the formation of an independent group. Meanwhile, Gunjol (軍卒), the base of the naval forces, played a certain role in the noncombatants’ chair and execution in addition to the combat and operations divisions. Shooter and artilleryman continued to have semen from the mid-18th century until the end of the 19th century, and along with gunners, they received preferential treatment over other soldiers. In addition, the increase in the number of operational personnel since the late 18th century seems to be linked to the enlargement of the warship and the transformation of the weapon system. The fact that there were about 400 to 700 crew on board the leading warship reflected the superior status of the Tongjeyoung. And the Jungyoung (中營) crew operated on a different line from the 7 warships, with slightly lower levels of discharge. Under the above discussions and reviews, the analysis of the “Tongjeyoung Military personnel register” since the mid-19th century showed some of its actual conditions. It was discovered that it shows the status of Bu-seon (副船), one of the main warships, and the Byung-seon (兵船) and the Sahu-seon(伺候船). Most of them were organized around Goseong-hyeon (固城縣), revealing the characteristics of Youngha-eup (營下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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