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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향음주례와 국가 역할에 대한 인식

The perception of the role of the state on local wine-drinking rite in late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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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周禮』‧『儀禮』‧『禮記』인 三禮 속 고대 正齒位 鄕飮酒禮는 국가적 속성이 짙은 의례였다. 정치위 향음주례는 長‧幼 사이의 질서를 익히는 場으로서 국가를 바르게 다스리기 위한 토대를 이루는 의례 중 하나로 설명되었다. 주나라의 경우, 그 시행의 책무를 지방관인 黨正에게 맡겨 孟冬마다 의례가 실행되도록 했다. 이후 한당의 주석가들은 정치위 향음주례가 고대 천자및 제후가 10월에 그들의 신하와 함께 시행한 나이에 따른 순서를 바로잡는 의례인 정치위 음주례에 연원을 두었으며 蜡제사와 연동되어 장유의 질서를 알게 하는 교화의 의미뿐 아니라 농한기에 군주의 은택으로 농부와 노인을 위로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하여 그들 역시 고대 국가의 정치 및 사회 운영이라는 맥락 위에서 의례가 시행되었던 것으로 인식했다. 위와 같은 정치위 향음주례의 고대적 특징들은 오랜 시간 역대 국가의 제도를 거치며 사라지기도 하고 유지되기도 하였다. 고대적 특징 중 사제사와의 연관성은 의례 시행 시기에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지만 국가가 관료 체계 안에 있는 지방관을 통해 의례를 운영하고자 했던 양상은 유지되었으며, 이는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은 15세기에 국가 의례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향음주례 의주를 만들고 이를 『국조오례의』 嘉禮에 실었는데, 이 의주에서도 향음주례의 주인은 역시 해당 지역의 지방관으로 설정되었다. 또한 향음주례의 실천을 논의할 때마다 그 의지를 구현할 수 있는 존재로 지방관이 호출되었다. 지방관을 중심으로 향촌에서 정치위 향음주례를 실천하고자 했던 모습은 조선 후기에도 유지되었다. 17~8세기 영‧정조대 조정에서 향음주례 실천을 논의할 때에도 가장 중요하게 주목하는 대상은 지방관이었다. 이와 같은 경향은 공식적이고 대표적인 정치의 공간인 조정에서뿐 아니라 윤증‧김창협‧황경원과 같은 인물들이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편지에서도 발견된다. 편지의 내용은 지방관이라는 자리가 그 자체로 향음주례 시행의 계기로 인식되고 있었던 모습을 드러내준다. 마지막으로 향음주례 시행을 위해 지방관을 포괄하는 더 큰 단위인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존재했는데, 이익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익이 남긴 정치위 향음주례에 대한 몇 편의 글은 각기 주장하는 내용은 다채로우나 모두 향음주례가 효험이 있을 정도로 빈번하게 또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상의 내용은 조선의 정치위 향음주례가 사족의 자치‧자율의 질서 수립 과정에서 도입되고 시행된 것으로 보거나 향촌 유교 지식인의 자발주의적 시행에 강조점을 두는 기존의 설명에 포괄되지 않는 장면들로 향음주례 시행의 국가적 맥락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Abstract

The ancient Jeongchiwi local wine-drinking rite(正齒位 鄕飮酒禮), as described in the Three Ritual Classics, had a strong national characteristic. It was explained as one of the rituals that form the foundation for properly governing the country as a place to maintain the order between the older and the younger. When the Han and Tang dynasty commentators explained the Jeongchiwi local wine-drinking rite, they also recognized that the ritual was performed in the context of an ancient state’s political and social operation. Throughout the history of ceremonial institutions, the ancient characteristics of the Jeongchiwi local wine-drinking rite have either disappeared or been preserved. Among them, the aspect of the state attempting to operate the rite through the local officials within the bureaucratic system was maintained, which was also the case in the Joseon Dynasty. At the beginning of the dynasty, Joseon made a manual for the local wine-drinking rite as part of organizing national rites and named the local officials as both the organizers and key participants. These officials were also considered beings who would embody the will of the state. This trend continu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as evidenced by discussions in the central court and private letters among intellectuals. It is crucial to understand the national context of the Jeongchiwi local wine-drinking rite, which previous scholarship has overlooked in favor of its local aspect.

참고문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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