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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수도 부산의 일제강점기 유산 활용에 관한 일고찰 - 아미동 ‘비석마을’의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Utilization of Heritag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Wartime capital of B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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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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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아미동 일본인 공동묘지 시설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보고 이를 활용하여 조성된 아미동‘비석마을’을 일제강점기 유산의 변용 사례라는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식민지 조선에 만들어진 일본인 공동묘지가 함축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유산의 성격에 대해 살펴본다. 강점 초기 일본 거류민 사회가 가지고 있던 귀향 의식의 발현으로 보인 식민지 조선에서의 묘비조성 거부는 총독부가 시정을 펼치기에 앞서 내지인의 안정적 정착을 도모하는 데 있어 방해 요소로 작용했다. 이를 이른 시기에 해결하며 동시에 내지인의 권위를 세워주는 방안으로 총독부는 근대식 화장시설의 도입과 묘지재정비 계획에 착수한다. 또한, 늘어난 내지인의 유입으로 시가지 확충을 위한 총독부의 토지 확보계획에 앞서 아미동으로 묘지 이전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자 이를 개선하기 위해 총독부는 묘지 규칙을 공표, 개정해나가며 묘지시설관리 일체를 정부 주도 아래에서 관리하게 된다. 이런 총독부의 묘지정책으로 인해 다니마치(谷町), 이후 아미동 일대의 일본인 공동묘지와 화장장은 근대식 시설과 공원화로 관리되었으며 이는 광복 이후까지 계속 사용된다. 이렇게 근대식으로 공원화된 아미동 일본인 공동묘지 시설은 역설적으로 피란수도기 여타 다른 곳의 거주 조성지보다 위생과 제반 시설이 갖춰진 곳으로 여겨지며 일본인 묘지를 보는 인식 변화와 함께 유산의 변용이 일어나 이주민의 생활 터전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아미동 ‘비석마을’의 거주민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빈민, 광복 이후 부산으로 귀환한 재일조선인 그리고 한국전쟁기 피란민들, 도시산업화에 밀린 철거민들이 거주하였으며 이들은 일제강점기부터 피란수도기에 걸쳐 마을 형성과정에 시기별로 유입되어 아미동의 특색을 만들어 내었다. 따라서 아미동 ‘비석마을’ 형성과정의 역사를 피란수도 시기에 한정하지 않고 일제강점기 문화유산의 변용이란 측면에서 살펴 피란수도 부산 유산에 일제강점기의 시기성을 더한다면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한계성으로 지목되고 있는 유산 자체의 낮은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극복하고 지역 밀착형 문화유산의 특징을 제시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considers the Japanese cemetery in Ami-dong as a modern cultural heritage and considers the Ami-dong 'Biseok Village' as an example of the transformation of Japanese colonial era heritage. To this end, let's first look at the nature of the Japanese colonial era heritage that the Japanese cemetery built in colonial Joseon implies. Graveyard of early Japanese residents and community strengths is denial, before corrective to dokppuga naeji to promote stable settlement of a disturbing factor. As a way to solve this problem at an early date and establish Japanese authority at the same time, the Governor-General plans modern cremation facilities. In addition, Joseon's burial culture led to conflicts with the government-general's land development plan and business expansion of Japanese businessmen. To improve this, the Governor-General issues the cemetery rules and manages all cemetery facilities under government initiatives. Due to the Government-General's policy of cemeteries, Japanese cemeteries and crematoriums in Tanimachi and Ami-dong were managed as modern facilities and parks, which continued to be used until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Paradoxically, the Japanese cemetery in Ami-dong, which was modernized as a park, is considered more sanitary and other facilities than other residential sites during the period of the Piran capital, and the change of heritage occurs along with the change of perception of Japanese graves. Residents of Biseok Village in Amidong were Japanese colonial era Joseon's poor, Korean residents returning to Busan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refugees from the Korean War, and demolished people who were pushed into the urban industrialization process from Japanese colonial era to the evacuation period, creating characteristics of Amidong. Therefore, the history of the 'Biseok Village' formation process in Amidong is not limited to the period of the evacuation of the Japanese colonial era cultural heritage. If Japanese colonial era is added to the Busan heritage site, it will help overcome the value of the heritage itself as a low cultural as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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