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의 화장과 불교와의 상호관련성에 대한 고찰 -조사(造寺)ㆍ조탑(造塔)신앙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Investigation on the Correlation of Cremation and Buddism in United Shilla-Era -Focusing on Religious Acts of Building Temples and Stup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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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화장묘에 관한 선학들의 연구성과를 살펴본 결과 화장묘의 도입과정에 있어서 중국 불교와의 관련성이 지적되었고, 화장묘의 형태변화와 인화문의 시문유무 그리고 장골기의 특징에 따라서 다양한 언급이 이루어졌다. 화장묘는 묘주의 신분에 따라서 이중형과 단독형으로 구분되며 왕경과 지방에 존재하는 화장묘는 그 종류에 있 어서 차이를 보인다. 대표적인 장골기인 연결고리유개호는 인화문토기의 시문여부로 볼 때, 8세기~9세기까지 존재 했음을 재확인하였다. 다만 9세기대의 연결고리유개호는 원화10년명 화장묘에서 알 수 있듯이 무문양이 주로 사용 되었다. 불교신앙의 성행에 따라 704년에 당에서 처음 한역된『무구정광다라니경』이 8세기 초에 신라로 전래되자 신라 인들은 장골기를 사용한 화장묘를 조성하거나 바닷가 또는 산에서 산골을 행하던 장례의식에서 사찰 안에 자신과 가족의 복을 구하고 망자의 극락왕생과 다가올 내세를 기원하기 위한 염원을 담은 석탑을 세우는 조탑신앙으로 사 후관념과 장송의례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결국 분묘로서의 화장묘가 가지는 의미는 점차 소멸하게 되며, 오히려 화장 후 산과 들에 산골을 한 후 사찰에서 망자를 추복하는 제사를 행하는 형태로 장례의식이 변화되었다고 생각된 다. 따라서 화장묘가 가지고 있던 가족의 제사는 석탑의 조성과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법회를 통한 조상의 추모와 개 인의 발복을 비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결국 이러한 사회적 변화가 횡혈식석실분이나 화장묘와 같은 고분조성이 점차 소멸하게 된 원인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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