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전쟁기 일본군의 경복궁 침략에 관한 군사사적 검토
A Review of the occupation of Gyeongbokgung(景福宮) by Japanese military from the military historical view in the period of Sino-Japanese War
0
조회
0
다운로드
6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청일전쟁(1894. 8. 1 ~ 1895. 4. 17)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싸고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청일전쟁과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기존 학계의 연구는 정치, 외교사적 측면에 집중되어 정작 전쟁이란 군사적 측면을 간과한 한계가 있다. 본 연구는 청일전쟁에 대한 군사적 분석으로 청일전쟁 초기 일본군의 구체적인 조선출병 과정 및 의미를 살펴본다. 일본은 명치유신이후 지속적으로 군제개편을 단행하여 군사력을 강화했으며, 갑신정변이후 실질적인 가상의 적으로 청을 상정하고 군비를 증강시켰다. 일본군의 군비증강은 육군의 편제개편 뿐만 아니라 해군력 강화를 주된 내용으로 했다. 조선에서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은 조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신속하게 군대를 조선에 출병시켰다. 출병의 명분과 달리 일본군은 조선정부를 압박하여 청일전쟁의 개전을 도모했다. 조선정부가 일본군의 출병이 불법적이라고 강력하게 항의하고 철병을 요구하자 일본군은 강압적으로 경복궁을 점령하고 고종을 인질로 삼아 친일내각을 구성했다. 일본군의 출병에서 경복궁 점령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일본군의 조선침략이었다. 일본군은 혼성9여단을 편성하여 조선에 출병시키고, 서울을 중심으로 한 군사전략적 요충지를 불법적으로 강점하여 조선을 압박했으며, 군용전신선을 가설하는 등 장기적인 군사행동을 취했다. 또한, 동학농민군이 자진 해산하자 조선의 정당한 일본군 철병요구를 묵살하고 조선의 내정개혁을 요구하는 등 억지주장을 거듭했다. 일본에 불리한 정치, 외교, 군사적 상황이 초래되자 일본은 경복궁 점령이란 군사작전을 감행하여 고종을 인질로 삼고 조선군을 강제로 무장해제 시켰다.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은 주권국가 조선의 정치, 군사력을 무력화시킴과 동시에 조선에서 발생하는 청일전쟁에 조선을 군수지원국으로 삼으려는 군사적 목적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사전에 철저히 준비된 일본군의 조선출병은 청일전쟁의 개전명분을 만들고, 향후 조선에 대한 군사적 강점의 시작이었다.
Abstract
The Sino-Japanese War(淸日戰爭 : 1 August 1894 – 17 April 1895) was broken out between the Qing Dynasty and Japan, in primarily order to control of Joseon. After more than six months of continuous successes by Japanese army and naval forces and the loss of the Qing's port of Weihaiwei(威海衛), the Qing leadership sued for peace with Japan in February 1895. The study of the existing academic materials on The Sino-Japanese War and Donhak Peasant War(東學農民戰爭) was political, diplomatic history centered on one side. There exists a limitation that military aspects of battle is overlooked. This study was on the analysis of the Sino-Japanese war from the military point of view, and on the research for Japanese army's process of deployment. Japan was stepping up its military power by the reorganization of a military system since Meiji restoration(明治維新). After Gapsin Coup(甲申政變) in Choseon, Japan started to think Qing in all as a potential enemies and to strengthen the military power, especially naval forces. When Donhak Peasant War was break out, the Japanese government decided that the Japanese army(混成 第9旅團 : a 9th mixed brigade) was dispatched to the territory of Choseon. On the 30th of May the Japanese government made it clear that it would deploy its troops to Choseon if the Qing dynasty decided to send its forces to the same area, Choseon. The deployment of force was expected to suppress the Donghak peasant forces and secure Japan's exclusive control over Choseon by carrying out the reform of its internal affairs. Choseon Dynasty immediately denounced Japan's dispatch and requested for withdrawal of troops out of the country. Japanese military forces occupied Gyeongbokgung(景福宮) and hold king Ko-jong(高宗) as a hostage, and Japanese government made the pro-Japanese party take power to reform of Choseon's domestic political systems. The Japanese government insisted that the occupation of Gyeongbokgung by its military forces would be only as a response to the Joseon army provocation of war. These historical events showed the policy of the Japanese government toward Choseon. On the crisis of the country, Donghak peasant army rose in arms against theJapanese army. To conclude, the deployment of Japan's military forces to Choseon is thoroughly prepared beforehand according to the elaborated plan and they started a war, and consequently had forcibly occupied the Choseon dynasty.
참고문헌 (84)
- 王信忠, "中日甲午戰爭之外交背景" (1937), 國立淸華大學
- 關捷, "甲午中日陸戰史" (1984), 黑龍江人民出版社
- 關捷, "中日甲午戰爭全史" (2005), 吉林人民出版社
- 姜鳴, "中國近代海軍史事日誌(1860-1911)" (1994), 三聯書店
- 呂一燃, "中國海疆歷史與現狀硏究" (1995), 黑龍江出版社
- 張秀蘭, "中日甲午戰爭是近代東北亞國際關係的重大轉折", 學習與探索, 1 (1995)
- 張俠, "淸末海軍史料" (2001), 海洋出版社
- 楊金森, "中國海防史" (2005), 海軍出版社
- 王宏斌, "晩淸海防-思想與制度硏究" (2005), 商務印書館
- 劉中民, "中國近代海防思想史論" (2006), 中國海洋大學出版社
- 史滇生, "中國海軍史槪要" (2006), 海潮出版社
- 李强華, "晩淸海權意識的感性覺醒與理性匱乏", 廣西社會科學 (2011)
- 戚其章, "甲午戰爭新講" (2009), 中華書局
- 鷄林通史, "朝鮮變亂實記" (1894), 扶桑堂
- 信夫淸三郞, "陸奧外交-日淸戰爭の外交史的硏究" (1935), 叢文閣
- 田保橋潔, "近代日鮮關の硏究" (1940), 朝鮮總督府中樞院
- "日淸戰役外交史の硏究" (1951), 刀江書院
- 中塚明, "日淸戰爭の硏究" (1968), 靑木書店
- 彭澤周, "明治初期日韓淸關係の硏究" (1969), 上高書店
- 藤村道生, "日淸戰爭" (1973), 岩波書店
- 參謀本部, "明治二十七八年日淸戰史" (1904), 東京印刷株式會社
- 川崎三郞, "日淸戰史" (1896), 博文館
- 陸軍省, "明治軍事史" (1966), 原書房
- 廣瀨彦太, "近世帝國海軍史要" (1938), 海軍有終會
- 松下芳男, "明治軍制史論" (1956), 有斐閣
- 藤原彰, "日本軍事史" (1987), 日本評論社
- 高橋秀直, "日淸戰爭ほの道" (1995), 創元社
- 후지무라 미치오, "청일전쟁" (1997), 小花
- 中塚明,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 (2002), 푸른역사
- 박영재, "淸日戰爭과 日本外交-遼東半島割讓問題를 中心으로", 역사학보, 53 (1972)
- 송충식, "淸日戰爭前夜韓半島를 둘러싼 國制關係-撤兵問題를 중심으로", 한국학보, 6(2) (1980)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淸日戰爭을 前後한 韓國과 列强" (198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문희수, "제3장 청일전쟁과 한국의 북방관계(1894-1899)", 한국정치외교사논총, 6 (1990)
- 강창성, "한국·일본 軍閥政治" (1991), 해동문화사
- 신복룡, "西巖趙恒來교수화갑기념 한국사학논총" (1992), 아세아문화사
- 최덕수, "청일전쟁과 동아시아의 세력변동", 역사비평, 26 (1994)
- 김영작, "한국 근대정치사의 쟁점:청일전쟁·갑오개혁·김옥균 암살" (1995), 집문당
- 김기혁, "淸日戰爭의 再照明" (1996),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 구선희, "淸日戰爭直前朝鮮‘屬邦’問題와 朝·淸關係", 史學硏究, 54 (1997)
- 최석완, "日本政府의 동아시아질서 재편정책과 淸日戰爭", 동양사학연구, 65 (1999)
- 이민호, "淸日戰爭과 朝鮮에 미친 영향", 동서사학, 8 (2001)
- 청일전쟁기의 일본정부의 동아시아질서 재편정책 -조약개정 외교와「6.2조선 파병 결정」보고서-, "최석완", ~ (2002)
- 김보경, "청일전쟁전후 국제질서 인식의 변화", 박사, 한국사, pp.2004
- 박맹수, "19세기 말 동아시아 전쟁에 대한 일본인의 ‘왜곡된’ 기억- 동학농민전쟁과 청일전쟁을 중심으로 -", 역사와 현실, (51), pp.37~66 (2004), 한국역사연구회
- 고영자, "청일전쟁과 대한제국:대한제국의 몰락을 주도한 일본의 교란책" (2006), 탱자출판사
- 엄찬호, "淸日戰爭에 대한 조선의 대응", 한일관계사연구, 25(25), pp.285~318 (2006), 한일관계사학회
- 강문호, "『蹇蹇錄』이 말하는 東學農民戰爭의 의미", 동학연구, 24(24), pp.53~82 (2008), 한국동학학회
- 淸日戰爭과 韓國-淸日兩國의 派兵을 中心으로, "동덕모", 문교부, ~ (1974)
- 김창수, "淸日戰爭과 韓日關係" (1985), 일조각
- 박종근, "청일전쟁과 조선" (1989), 일조각
- 강효숙, "청일전쟁기 일본군의 조선병참부 —황해‧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근현대사연구, (51), pp.139~168 (2009), 한국근현대사학회
- 金舜圭, "청일전쟁-청측의 패인 분석", 군사, 16 (1988)
- 양태진, "淸日戰爭은 왜韓半島에서 일어나야 했는가", 軍史, 29 (1994)
- 심헌용, "러시아의 한반도 군사관계사 : 영토확장·청일전쟁·러일전쟁을 중심으로" (2002),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 松下芳男, "明治軍制史論 (上)", pp.32~105 (1956), 有斐閣
- 박영준, "명치시대 일본군대의 형성과 팽창" (1997), 국방군사연구소
- 박제홍, "메이지천황과 學校儀式교육-국정수신교과서를 중심으로-", 日本語文學, 1(28), pp.245~264 (2006), 한국일본어문학회
- 廣瀨彦太, "近世帝國海軍史要", pp.886~887 (1938), 海軍有終會
- 藤原彰, "日本軍事史 (上)", pp.58~ (1987), 日本評論社
- 松下芳男, "明治軍制史論 (下)", pp.3~8 (1958), 有斐閣
- 陸軍省, "明治軍事史 (上)", pp.696~698 (1966), 原書房
- 蜷川新, "三大国際会議と日本", pp.31~35 (1930), 駒沢大学出版部
- "官報 제2,966호", 明治26년(1893)5월 22일, ~ (1893)
- "고종실록", ~
- "梅泉野錄", ~
- 김창수, "청일전쟁과 한일관계", pp.3~9 (1990), 일조각
- "駐韓日本公使館記錄", ~
- 박맹수, "동학농민전쟁기 일본군의 정보수집활동", 역사연구, 19 (2010)
- "駐韓日本公使館記錄", ~
- "舊韓國外交文書 日案2", ~
- 박종근, "청일전쟁과 조선" (1989), 일조각
- 陸軍省, "明治軍事史 (上)", pp.906~ (1966), 原書房
- 參謀本部, "明治二十七八年日淸戰史 卷1" (1904), 東京印刷株式會社
- 陸軍省, "明治軍事史 (上)", pp.908~ (1966), 原書房
- 陸軍省, "日淸戰爭統計集 上卷-1" (2005), 海路書院
- 김경창, "동양외교사", pp.379~405 (1995), 집문당
- 배항섭, "19세기 조선의 군사제도 연구" (2002), 국학자료원
- "승정원일기", ~
- 배항섭, "19세기 조선의 군사제도 연구", pp.178~ (2002), 국학자료원
- 최병옥, "임오군란 후 친군제의 성립과 그 모순", 군사, 26, pp.91~95 (1993)
- "梅泉野錄", ~
- "梧下記聞 首筆", pp.36~37
- "梅泉野錄", ~
- 박상섭, "근대국가와 전쟁 -근대국가의 군사적 기초,1500~1900" (2002), 나남출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