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지역 나말여초 불교조각과 굴산선문
Buddhist Sculpture of Late Silla and Early Goryeo Period at Myeongju and the Gulsan School of Seon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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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산사( 山寺)는 신라하대에 통효대사 범일(梵日, 810~889)에 의해 개창된 이래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하나인 사굴산파( 山派)의 본산으로서 크게 융성하였다.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위치한 굴산사지에는 거대한 당간지주를 비롯해서 고려시대 석조부도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2구 전해오고 있으나, 범일과 그의 제자인 개청(開淸, 854~930), 행적(寂, 832~916)이 활동했던 나말여초기 굴산사를 알려주는 불교조각은 전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나말여초기 굴산선문의 불교미술을 살펴보기 위한 시도로서 굴산선문의 영역권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금의 강릉, 오대산, 동해시 등지로 범위를 넓혀 나말여초기명주지역 불교미술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범일과 그의 제자들이 활동하던 시기 굴산선문의 불교미술을 유추해보았다. 강릉지역의 석조물 가운데 강릉시 오죽헌박물관에 옮겨진 무진사지(無盡寺址) 석탑의 부조 사방불상과 사천왕상은 신라 중앙이나 양양 진전사지, 선림원지 석조미술과 양식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나말여초기 명주지역 불교미술이 당시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말해준다. 범일의 제자인 개청이 주석했던 보현산 지장선원[普賢寺]에 전해오는 석조대좌의 부재(部材)는 팔각연화대좌의 하대 복련좌(覆蓮座)를 받치고 있던 팔각의 받침석으로 안상(眼象)에 사자(獅子)가 새겨져 있어 나말여초기 광범위하게유행하였던 지권인 비로자나불좌상의 대좌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편, 국립춘천박물관과 강릉 오죽헌시립박물관에 각각 소장되어 있는 한송사지(寒松寺址) 석조보살좌상 2구는 대리석이라는 재료를 비롯해서 머리 위에 쓴 원통형의 고관(高冠), 양손의검지를 곧게 뻗은 수인(手印), 다리를 편히 놓은 서상(舒相)의 좌세 등, 독특한 밀교계 요소를 보여준다. 이러한 밀교계(密敎系)도상(圖像)은 굴산선문 승려들의 당 유학(遊學)을 통해 명주지역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활발했던 굴산선문 승려들의국제적 활동은 지역 미술에 큰 영향을 주면서, 선진성을 고양하였을 것이다. 동해시 삼화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의 시무외·여원인의 수인을 결(結)한 화엄계 노사나불상 표현은 당시로서는 예외적인 도상으로서 명주지역 미술이 전통성을 고수했던 면도있었음에 주목하게 한다. 굴산선문 불교미술은 중앙지역과 같이 하는 양식 수준, 활발한 대당(對唐) 교류의 결과로 나타나는 선진문화의 수용으로 요약될 수 있으며, 선진성과 국제성은 나말여초기 굴산선문 불교미술의 기본 성격으로 생각된다.
Abstract
This paper investigates Buddhist sculptures of the Gulsan-sa School of Seon Buddhism, which was established by the priest Beomil(梵日) at Myeongju(溟州), present-day Gangneung(江) area, and prospered until the late Goryeo period. There are very few surviving Buddhist images at Gulsan2 temple-site showing the Buddhist art when Beomil or his disciples, Gaecheong(開淸) and Haengjeok(寂), were active, except a set of huge stone pillars for temple-banners and a stone monk stupa. It is therefore necessary to focus on pieces of artworks in Gangneung and nearby areas to explore the characteristics of Buddhist art of Gulsan-sa from the late Silla to early Goryeo period. For example, the stone relief seated Buddha image, one of Four Buddhas of Four Directions, and a stone relief of standing Guardian King both from the stone pagoda at Mujin temple-site(無盡寺址) can be compared with stupa reliefs at the capital Gyeongju area in their high quality of carving. The stone octagonal base showing seven lions on each of seven sides at Boheon-sa(普賢寺) demonstrates that it was made as a part of an octagonal lotus pedestal for a Vairocana Buddha now lost. Since Boheon-sa was erected by Gaechung, a disciple of Beomil as a branch of Gulsan-sa, it is fair to assume that the Vairocana image at Boheon-sa might have been closely related to the Buddhist images at Gulsan-sa in its style and iconography. The stone seated Bodhisattva from Hansong temple-site(寒松寺址) displays a benign face, exquisite necklace, and exotic iconography in its hand gesture and high cylindrical crown. The stone seated Buddha at Cheonghak-sa(靑鶴寺),brought from a temple-site where fragments of roof-tiles with the inscription of Heukam-sa(黑岩寺) were discovered,displays the late Silla and early Goryeo period. Heukam-sa seems to have been related to Gulsan-sa or have been one of the branches of Gulsan-sa. Extant fragments of artworks at Myeongju implicate the high quality of Buddhist art of Gulsan-sa in its iconography and style as well as unique features of Gulsan-sa Seon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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