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위만조선-漢나라의 전쟁 양상

The Features of the war between Wiman Chosun and Chinese Han Dynasty

0

조회

0

다운로드

1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 연구는 위만조선과 漢나라의 전쟁 원인 및 전쟁 양상을 살펴보았다. 전쟁의 직접적인 발단은 漢나라 섭하가 조선 비왕을 살해한 것이다. 이러한 漢나라의 도발에 대해 위만조선은 전쟁을 택할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요동 동부도위 공격으로 이어진다. 섭하가 임명된 요동 동부도위 치소는 위만조선 멸망 후 요동 중부도위가 되는 후성현 지역일 가능성이 있다. 漢나라 군대의 규모와 진격로를 추정한다면 당시 漢나라 수군이 서해 중부 횡단항로를 통해 위만조선을 공략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漢나라는 수군을 서해 북부 연안항로를 통해 보내고 육군 5만 명은 요동으로 향하게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이해된다. 위만조선은 이미 패수 서쪽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고 수륙군의 합류를 저지하며 초반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었다. 이후 양국은 협상에 들어가지만 결국 결렬된다. 이때 한무제는 직접 친정에 나서 패수와 가까운 지역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협상이 무산된 이후 전세는 조선군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패수 위의 위만조선 군대가 좌장군의 군대에게 패하면서 패수방어선이 무너진 것이다. 그로인해 漢나라의 수륙군이 합류하여 왕검성을 포위한다. 왕검성의 위치는 대동강 북안에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方數千里’의 위만조선이 서쪽 경계인 패수와 가까운 지역에 도읍인 왕검성을 두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왕검성은 수개월 동안 적의 공격을 잘 방어한다. 하지만 결국 전쟁이 길어지자 위만조선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 우거왕은 암살되고 왕검성은 함락된다. 위만조선은 漢나라의 보급을 저지하지 못했다. 결국 이것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위만조선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또다른 원인으로 볼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investigates the causes and aspects of the war between Wiman Chosun (衛滿朝鮮) and Han (漢). The major cause of the war was that Shehe (涉何) of Han murdered Biwang of Gochosun, which was the firstly established country in the Korean peninsula. Wiman Chosun could not but choose the war as a result of this provocation of Han, which led to the attack of Wiman Chosun on Liaodong Eastern Section. The location of Liadong Eastern Section to which Shehe was appointed is possibly the region of Houcheng-xian (候城縣), which became Liadong Central Section after the fall of Wiman Chosun. If we conjecture the scale and advance route of Han's armies, it does not seem probable that the navy of Han dynasty attacked Wiman Chosun via the trans-central West Sea route. Therefore, it is construed as proper that Han sent its navy via the northern West Sea coastal route and dispatched its army composed of 50,000 soldiers towards Liadong. Wiman Chosun had already captured an advantageous position to the west of Paesu (浿水) river, and so was able to prevent the joining of Han's army and navy and lead early combats to the advantage of Wiman Chosun. Afterwards, the two countries started negotiations, which, however, came to a rupture after all. It is probable that Wudi of Han went on the conquest in person and was at a region near Paesu. After the negotiations was failed, the tide of war turned against Chosun troops. For the armies of Wiman Chosun above Paesu was defeated by the armies of Han's General taken up the position of left flank, and thus the defense line of Paesu was broken through. Consequently, the army and navy of Han joined to lay siege to Wanggeom-seong (王險城). It is the general opinion that Wanggeom-seong was located on the northern shore of the ‘Daedong’ River. It is hard to imagine that Wiman Chosun, whose territory extended thousands of li in all directions (方數千里), had its capital near Paesu, which was on the western boundary. Wanggeom-seong defended successfully against the enemy's attack for months. However, as the war was protracted, a rebellion occurred within Wiman Chosun, King Ugeo was assassinated, and Wanggeom-seong (王儉城) was captured after all. Wiman Chosun failed to block supplies for Han armies. In conclusion, the consequential protraction of the war may be viewed as another cause of the fall of Wiman Chosun.

참고문헌 (75)

  1. "文獻通考", ~
  2. "史記", ~
  3. "三國遺事", ~
  4. "三國志", ~
  5. "鹽鐵論", ~
  6. "前漢紀", ~
  7. "册府元龜", ~
  8. "通志", ~
  9. "漢書", ~
  10. "後唐書", ~
  11. "後漢書", ~
  12. 강봉룡, "(바닷길로 찾아가는) 한국 고대사" (2016), 경인문화사
  13. 권오중, "요동왕국과 동아시아" (2012), 영남대학교출판부
  14. 김남중, "위만조선의 성립과 발전 과정 연구", 박사, 사학과 한국사전공, pp.2014
  15. 동북아역사재단, "역주 중국 정사 동이전 1 : 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2020), 동북아역사재단
  16. 苗威, "衛氏朝鮮史" (2019), 中國社會科學出版社
  17. 박선미, "고조선과 동북아의 고대 화폐" (2009), 학연문화사
  18. 박준형, "고조선사의 전개" (2014), 서경문화사
  19. 三軍大學, "中國曆代戰爭史 第3冊(楚漢戰爭~東漢)" (2012), 軍事譯文出版社
  20. 서인한, "韓民族戰爭通史1(고대편)" (1994), 國防軍史硏究所
  21. 서인한, "한국고대 군사전략" (2005),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22. 서인한, "한중군사관계사" (2007),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23. 孫進己, "東北歷史地理(1)" (1989), 黑龍江人民出版社
  24. 송호정,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 (2003), 푸른역사
  25. 온창일, "한민족전쟁사" (2001), 집문당
  26. 육군군사연구소, "한국군사사 1(고대1)" (2012), 육군본부
  27. 王錦厚, "東北古代交通" (1990), 沈陽出版社
  28. 이춘식, "중국패권의 뿌리와 이념" (2014), 고려대학교출판부
  29. 이춘식, "고대 중국의 패권전략과 주변국 조공화" (2020),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30. 이청규, "해상활동의 고고학적 기원과 전개" (2016), 경인문화사
  31. 전대준, "조선단대사(고조선사)" (2010), 과학백과사전출판사
  32. 정인보, "朝鮮史硏究(上)" (1946), 서울신문사
  33. 정진술, "한국의 고대 해상교통로" (2009), 韓國海洋戰略硏究所
  34. 陳梧桐, "中國軍事通史 5(西漢軍事史)" (1998), 軍事科學出版社
  35. 최병욱, "사마천의 동아시아 – 초, 한, 남월, 조선" (2018), 산인
  36. 編寫組, "中國歷代戰爭簡史" (2006), 解放軍出版社
  37. 권오중, "滄海郡과 遼東東部都尉", 역사학보, 168 (2000)
  38. 권오중, "고구려의 국제관계" (2005), 동북아역사재단
  39. 기수연, "동아시아의 지역과 인간" (2005), 지식산업사
  40. 김남중, "衛滿朝鮮의 領域과 王儉城", 韓國古代史硏究, 22 (2001)
  41. 김병준, "漢이 구성한 고조선 멸망 과정-『사기』 조선열전의 재검토-", 한국고대사연구, (50), pp.5~50 (2008), 한국고대사학회
  42. 김정배, "위만조선의 國家的 性格", 사총, 21·22 (1977)
  43. 남일룡, "대동강류역 고대성곽의 성격", 조선고고연구, 1
  44. 도유호, "왕검성의 위치", 문화유산, 5 (1962)
  45. 苗威, "西漢海伐衛氏朝鮮考論", 海交史研究, 2 (2018)
  46. 박경철, "古朝鮮 對外關係 進展과 衛滿朝鮮", 동북아역사논총, (44), pp.13~63 (2014), 동북아역사재단
  47. 박성용, "한나라 군사작전으로 본 위만조선 왕험성 위치 고찰: 북한급변사태 시 중국의 연고권 개입 명분에 대한 함의", 국방연구, 58(2), pp.1~35 (2015), 국가안전보장문제연구소[DOI]
  48. 박순발, "連雲港 封土石室墓의 歷史 性格", 백제연구, (57), pp.81~98 (2013), 백제연구소
  49. 박영해, "기원전 2세기 말~기원 4세기 초의 여러 전쟁과정을 통하여 본 락랑군의 위치", 력사과학, 4 (1996)
  50. 박준형, "古朝鮮의 海上交易路와 萊夷", 북방사논총, 10 (2006)
  51. 박준형, "기원전 3~2세기 고조선의 중심지와 서계의 변화", 사학연구, (108), pp.1~37 (2012), 한국사학회
  52. 박준형, "산동지역과 요동지역의 문화교류–산동지역에서 새로 발견된 선형동부를 중심으로–", 한국상고사학보, 79(79), pp.39~68 (2013), 한국상고사학회
  53.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고조선문제 연구론문집" (1976), 사회과학출판사
  54. 손광기, "漢唐時期 中國과 韓半島의 海上航路", 백제연구, (57), pp.1~16 (2013), 백제연구소
  55. 송호정, "衛滿朝鮮의 王儉城 위치에 대한 최근 논의와 비판적 검토", 역사와 담론, (92), pp.5~42 (2019), 호서사학회
  56. 서영수,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 한국사 시민강좌, 2 (1988)
  57. 서영수, "衛滿朝鮮의 形成過程과 國家的 性格", 韓國古代史硏究, 9 (1996)
  58. 서영수, "古朝鮮의 對外關係와 疆域의 變動", 東洋學, 29 (1999)
  59. 서영수, "요동군과 현도군 연구" (2008), 동북아역사재단
  60. 오영찬, "기원전 2세기대 서북한 고고 자료와 위만조선", 한국고대사연구, (76), pp.95~125 (2014), 한국고대사학회
  61. 오현수, "『회남자』 기재 ‘갈석’과 ‘요수’를 통해 본 전기 고조선의 중심지", 한국학, 35(4), pp.267~296 (2012), 한국학중앙연구원[DOI]
  62. 劉子敏, "戰國秦漢時期遼東郡東部邊界考", 社會科學戰線, 5 (1996)
  63. 윤내현, "위만조선의 재인식", 史學志, 19 (1985)
  64. 윤명철, "해양질서의 관점으로 본 王險城의 성격과 위치", 고조선단군학, 33(33), pp.201~256 (2015), 고조선단군학회
  65. 王子今, "論楊仆擊朝鮮樓船軍“從齊浮渤海”及相關問題", 魯東大學學報(哲學社會科學版), 1 (2009)
  66. 이병도, "韓國古代史硏究" (1976), 博英社
  67. 이청규, "중국 산동지역의 동이" (2018), 역사공간
  68. 정인성, "고고학으로 본 위만조선 왕검성", 한국고고학보, (106), pp.104~137 (2018), 한국고고학회
  69. 정인성, "북방지역 주요 고고 유적 -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2020), 동북아역사재단
  70. 조법종, "衛滿朝鮮의 崩壤時點과 王險城ㆍ樂浪郡의 位置", 한국사연구, 110 (2000)
  71. 조법종, "위만조선의 대한 전쟁과 강한제후국의 성격", 先史와 古代, 14 (2000)
  72. 조원진, "위만조선의 대외관계에 대한 검토 -朝·漢 전쟁 이전을 중심으로-", 백산학보, (109), pp.59~87 (2017), 백산학회
  73. 조원진, "고조선과 秦나라의 대외관계 연구", 사학연구, (129), pp.197~236 (2018), 한국사학회
  74. 조원진, "고조선과 燕나라의 전쟁과 요동", 선사와 고대, (62), pp.35~75 (2020), 한국고대학회[DOI]
  75. 蔡鳳書, "東アジアと『半島空間』 : 山東半島と遼東半島" (2003), 思文閣出版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6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