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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를 통해 본 분황사(芬皇寺)의 중대신라 불교미술

Mid-Silla Buddhist Art of Bunhwangsa Temple Seen through the Record of Samguky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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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고에서는 선덕여왕대에 창건되어 신라 왕실불교의 중심사찰이었던 분황사에 봉안되었던 중대신라기 불교조각과 벽화의 성격을 『삼국유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유추해 보았다. 『삼국유사』에는 분황사 관련하여 원효의 소조 초상조각, 좌전 북벽의 천수대비상 벽화, 금동약사여래상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가운데 아들인 설총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고 전하는 원효의 ‘고상(顧像)’은 설총이 만들었다는 초상조각으로 중국 남북조시대 이래 유행했던 유마거사상의 이미지를 모델로 하여 조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본적으로 문수보살을 향해 고개를 옆으로 돌린 자세로 앉은 초당기 유마거사상의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나아가 석굴암 감실 유마거사상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유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분황사 좌전 북벽에 그려져 있던 천수대비상은 솔거(率去)의 작품으로 생각되고 있는데, 경덕왕대에 한기리에 사는 여인 희명의 눈먼 아이의 눈을 뜨게 했다는 영험함이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불렀다는 「도천수대비가」의 내용을 보면, 이 그림 속의 천수대비상은 눈이 그려져 있는 손을 천 개 가지고 있는 천수천안관음보살상이었다. 이 분황사 천수관음상을 ‘천수대비’로 불렀던 점에서 볼 때, 이 상은 당초(唐初)에 가범달마(伽梵達摩)가 번역한 『천수경』의 경궤에 따른 것으로 생각되며, 마찬가지로 ‘천수대비’로 불렸던 중생사와 백률사의 천수관음상 역시 같은 경궤에 의거한 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경덕왕대에 조성된 분황사 약사여래상의 주조에는 30만 6700근의 동(銅)이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많은 동이 사용된 것은 약사여래상 뿐 아니라 『약사경』에 언급된 약사여래의 권속 및 상징물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본이역(同本異譯)의 여러 『약사경』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약사신앙의 행법(行法)에는7구의 약사불상을 조성하고 등명대를 설치하여 등(燈)을 밝히는 내용이 보인다. 또한 수대(隋代) 이래 나타났던 <약사여래변상>에 등장하는 약사여래의 협시(脇侍)로서는 일광·월광보살을 비롯해서 8대보살, 십이신장이 배치될 수 있다. 나라(奈良)시대에 창건된 신야쿠시지(新藥師寺)에는 7불 약사상과 그 권속의 여러 상들이 조성되었는데,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신라에서 이루어진 분황사의 불사(佛事)에서도 본존 약사불상 외에 관련된 여러 도상이 함께 조형화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investigates the Buddhist sculpture and wall-painting enshrined in the halls of Bunhwangsa (Bunhwang temple) at Gyeongju in the mid-Silla period, which are thoroughly unknown to us except through textual records of Samgukyusa compiled by Priest Ilyeon in the late thirteenth century. According to Samgukyusa, a clay portrait-sculpture of Monk Wonhyo, made by his son Seolchong, was placed in Bunhwangsa. This image faced to the side, because he turned his body toward Seolchong when Seolchong bowed to this image. This story suggests that the portrait image of Wonhyo was most likely made after the Vimalakirti images, which were popular in China from the Six Dynasties period on, especially the Vimalakirti images of the early Tang period, turning his head and body toward Bodhisattva Manjusi seated opposite. The Vimalakirti image of Seokkuram might show the portrait image of Wonhyo. A wall-painting of a Thousand-Armed Avalokiresvara who has a thousand arms with a thousand eyes, called by the name ‘Great Mercy with a Thousand Hands’, was enshrined on the north wall of the left hall of Bunhwangsa. During King Gyeondeok’s reign, Himyeong and her five-year-old blind child prayed before this image, and the blind child gained eyesight. While praying, they sang a song pleading for one of the thousand eyes which the Bodhisattva had in his hands. This song implies that Thousand-Armed Avalokiresvara had a thousand eyes, one painted on each hand. The fact that Thousand-Armed Avalokiresvara of Bunhwangsa was called ‘Great Mercy with a Thousand Hands’ indicates that this painting was based on the scripture Thousand-Armed Avalokiresvara Sutra translated by Bhagavaddharma in about 655, in the Tang period, which also has ‘Great Mercy’ in its title. In the year 755, a gilt bronze image of Medicine Buddha was made in Bunhwangsa, using nearly 61 tons of bronze to cast. The huge amount of bronze suggests it includes not only the Buddha statue but many other images such as two attendant Bodhisattvas of Suryaprabha and Candraprabha, Eight Great Bodhisattvas, or Twelve Guardians. Seven images of Medicine Buddha might have been made in accordance with the scriptural text of Seven Medicine Buddha Sutra translated by Monk Yijing. Textual evidence and recent excavation have revealed that seven images of Medicine Buddha and their whole attendant images based on Seven Medicine Buddha Sutra were made in the Nara period from 751 to 762 when Queen Gomyo contructed Sinyakusiji temple for the recovery of her husband Shomu. It is fair to assume that one or seven Medicine Buddhas and a whole group of his (their) attendant images were made for the main hall of Bunhwangsa temple in 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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