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下三道 지역의 軍事編制와 軍兵組織
The change of local military forces and the military organization in ‘hasamdo’ area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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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지방군은 다양한 兵種이 添設되면서 그 종류가 복잡다단해졌다. 크게 監營軍 ‧ 兵營軍 ‧ 鎭營軍 ‧ 山城 및 기타군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각 군영에는 束伍軍 ‧ 標下軍 ‧ 牙兵 등의 다양한 병종이 존재하였다. 전체 지방군 액수는 약 366,543명이었는데 진영군이 약 143,313명(39%)으로 가장 많았으며, 병종 중에서는 속오군이 전체 병종의 약 3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이 수치는 속오군이 조선후기의 지방군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절대적인 수치는 아니며, 속오군도 지방군의 일종일 뿐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하삼도 지방군은 공통적으로 主鎭(감영 ‧ 병영) 아래 3~5개의 진영이 편제되어 있었고, 각 주진과 진영에는 屬邑들이 배정되어 있었다. 이 체제가 조선전기의 鎭管體制와 다른 점은 각 주진(병영, 진영) 아래에 諸鎭 대신 속읍이 배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진관체제에서의 제진들은 독립적으로 군사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진영체제에서의 속읍들은 병영 및 진영들의 경제적․군사적 지원만을 할뿐이었다. 하삼도 지방군의 군병조직은 속오법에 기초하여 이루어졌고, 각 군영의 군병들은 장교와 일반군병으로 구분되었으며, 이들은 다시 步軍과 馬兵으로 나뉘어졌다. 正兵의 경제적 보조를 위해 배정하였던 각 군영의 軍保 배정실태를 보면, 보군은 1:1의 군보 배정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으나, 마병은 1:2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었다. 이는 조선후기에 마병이 지방군의 주요병종으로 자리매김했음을 의미한다. 마병의 운용에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칙대로 운용한 이유는 17세기 이후 청나라의 기마전술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하삼도 지역의 국방정책이 禦倭에서 防胡로 전환된 것을 의미한다. 하삼도 군병조직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주요병종은 표하군과 아병이다. 하삼도의 표하군은 충청도 中營의 사례로 보아 討捕를 위한 토포군과 장교층의 軍務를 보좌하기 위한 실무병이 대부분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아병은 實戰時 지휘체계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감사에게 직할병력을 만들어주기 위해 설치한 것이었으나, 그 실효성이 인정되어 각 군영에 확대되었던 병종이었다. 초기에는 별도의 牙兵屬邑을 설정하여 징발하였으나, 점차 收布軍으로 변질되었고 급기야 私奴로만 충원되었다. 두 병종은 지방군의 주요병종이었던 속오군이 점차 虛泄化되면서 지방군의 정예 병력으로 활용된 듯하다. 그러나 이들도 점차 수포군으로 변질되어 많은 폐단이 발생하였다.
Abstract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Joseon in 1592, the local military forces in Joseon became very complex in its kind as various army branches were newly added to it. The local military forces could be largely classified into ‘gamyeong-gun’, ‘byeongyeong-gun’, ‘jinyeong-gun’, ‘sanseong and others-gun’ on ‘gunyeong’ level. Under each ‘gunyeong’, various ‘byeongjong’ such as ‘sogo-gun’, ‘pyoha-gun’ and ‘ahbyeong’ were set up. Total number of local military forces were about 366,543 soldiers. Among them, ‘jinyeong-gun’ was the most on ‘gunyeong’ level with about 143,313 soldiers (39%) and ‘sogo-gun’ was the most with the weight of 38% on ‘byeongjong’ level. This number implies that ‘sogo-gun’ did not represent the whole local military force during late Joseon period and ‘sogo-gun’ was just one of the branches of the local military force. The local military force in ‘‘hasamdo’ (the three provinces of Chungcheong-do, Jeolla-do and Gyeongsang-do in the south) was consisted of ‘gamyeong’ or ‘byeongyeong’ as its ‘jujin’ and 3 to 5 of ‘jinyeongs’ under it. Each ‘jujin’ and ‘jinyeong’ was allocated of its own ‘sokeups’(supporting towns). The difference of this organization from the military organization during early Joseon period ‘jingwan’ system was that ‘sokeups’ were allocated under each ‘jujin’ (‘byeongyeong’ or ‘jinyeong) instead of ‘jejins’ in early Joseon period. The ‘jejins’ in the ‘jingwan’ system performed independent military role; however, the ‘sokeups’ in ‘jinyeong’ system just gave economic and military support to ‘byeongyeongs’ and ‘jinyeongs’. The organization of ‘hasamdo’ local military force was based on the ‘sogo' law. The soldiers in each ‘gunyeong’ were consisted of officers and soldiers and they were again classified into ‘bogun’ and ‘magun’. For the economic support of regular military force, ‘gunbos’ were allocated. Though not every foot soldier had one ‘gunbo’, most cavalry soldier had 2 ‘gunbos’. It implies that cavalry was the major force in local military force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Though it cost a lot to operate a cavalry, the economic support principle for cavalry was kept to prepare for the cavalry tactics of Ching dynasty of China since 17th century. This implies that the defense policy of ‘hasamdo’ was shifted from ‘eo-wae’ (defense against Japanese invasion) to ‘eo-hu’ (defense against Chinese invasion). The common major branches in ‘hasamdo’ military organization were ‘pyoha-gun’ and ‘ahbyeong’. According to the case of ‘jungyeong’ in Chungcheong-do, it was possible to assume that the ‘pyoha-gun’ in ‘hasamdo’ were mostly ‘topobyeong’ for catching thieves and ‘silmubyeong’ who were assistants to officers. Meanwhile, ‘ahbyeong’ were soldiers reporting directly to the administrative governors who were not in the commanding line during the real war. Since the effectiveness of ‘ahbyeong’ was acknowledged, it was expanded to each ‘gunyeong’. ‘Ahbyeong’ also had ‘sokeups’ (supporting villages). However, ‘ahbyeong’ gradually changed to ‘supo-gun’ consisting of private slaves. It is believed that ‘pyoha-gun’ and ‘ahbyeong’ were utilized as elite forces of local military force while ‘sogo-gun’ gradually disappeared. However, ‘pyoha-gun’ and ‘ahbyeong’ also caused many negative effects as they changed to ‘supo-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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