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전기 신숭겸 추념과 팔관회의 연관성 고찰
A Stud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Remembrance&Commemoration for Shin Sung-gyeom and Palgwanhoe during the Early Period of Gorye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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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을 고려전기의 팔관회와 연관시켜 검토하였다. 먼저 신숭겸의 전몰과 그에 대한 팔관회에서의 추념을 태조 왕건과의 관계 속에서 살폈다. 뒤이어 팔관회가 정지되었다가 재개되는 속에서 개경 팔관회는 물론이고 나주와 서경 팔관회에서 신숭겸을 추념하는 의식의 향배가 어떠하였는지, 더욱이 그것이 신숭겸을 곡성 성황신으로 추앙하는 일이며 또는 悼二將歌의 출현으로 이어지는 경위 등을 더듬었다. 신숭겸은 태조 왕건의 복심이었다. 왕건은 그를 각별히 신임하였으며, 그리하여 신숭겸에게 平山 申氏를 賜姓․賜貫함으로써 浿西勢力에 편입시켰다. 정권의 기반을 굳히며 나아가 정치적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얻고자 함에서였다. 그만큼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밀착된 관계였다. 팔공산전투에서 위험에 빠진 태조를 구하고자 신숭겸이 자진해서 사지로 뛰어든 것은 그에 말미암은 일이었다. 왕건은 신숭겸의 전몰을 매우 슬퍼하며 추모하였다. 유족을 각별히 우대하는 것과 함께, 춘천의 총묘에 신숭겸을 예장하고 智妙寺를 세워 영령의 안식을 축원하였다. 나아가 팔관회에서 신숭겸의 충절을 기리는 의식을 행함으로써 추념의 정을 한층 곡진히 하였다. 고려 팔관회는 成宗에 의해 폐지되었다가 顯宗에 의해 복구되었다. 팔관회에서 신숭겸을 추념하는 의식도 함께 되살아났다. 잇따라 나주 팔관회가 개설됨에 미쳐, 신숭겸을 추념하는 儀式은 나주 관내의 곡성 지역사회에 영향을 끼쳤다. 신숭겸의 출신지인 곡성에서 그의 행적은 한층 높이 기림을 받게 되었으며, 마침내 신숭겸은 신격화되어 곡성군의 성황신으로 추앙되었다. 신숭겸을 추념하는 정서가 나주 팔관회를 통해 지방으로 번져간 끝에, 곡성에서 그는 고을을 상징하는 성황신으로 받들어져 자리를 잡기에 이르렀다. 靖宗의 즉위와 함께 서경 팔관회가 재개되었다. 서경 팔관회에서도 신숭겸을 추념하는 의식이 베풀어졌다. 그런데 睿宗 15년(1120)에 그것을 관람하던 국왕이 신숭겸의 충절에 감동하여 찬탄하는 시를 읊었다. 이른바 悼二將歌였다. 예종이 서경에 행차하여 팔관회를 베풀고 신숭겸의 충절을 기리는 시가를 지은 것은, 여진의 흥기에 경각심을 고취하며 더불어 자신의 후계문제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신숭겸의 충절을 본받아 국왕을 섬기며, 또한 자신의 후계자인 어린 태자를 한마음으로 받들어야 함을 주문하는 의미가 담긴 행사였다. 그로써 국왕이 정국을 한층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물론, 후계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지 않은 가운데 왕위가 안정적으로 계승되는 효과를 기대하였다.
Abstract
This paper studied Shin Sung-gyeom in relation with Palgwanhoe during the early period of Goryeo Dynasty. First it examined, in relation with Wang Geon, King Taejo of Goryeo dynasty, Shin’s death in battle and commemoration in Palgwanhoe to praise his righteous death. Next this paper considered how the celebration of commemoration for Shin’s death in Naju and Seogyeong (Western Capital) Palgwanhoe, needles to say Gaegyeong Palgwanhoe, went while Palgwanhoe was stopped and reopened, and further contemplated how the celebration of commemoration for Shin’s death produced worshipping Shin Sung-gyeom as a tutelar deity of castle in Gokseong county and the appearance of a poem Doijang’ga. Shin Sung-gyeom was a confidential subject of King Wang Geon. Wang Geon trusted Shin especially and therefore enrolled him as a member of Paeseo party by bestowing bon’gwan(clan seat) and family name on him as Pyeongsan Shin. Through such way Wang Geon intended to make the foundation of the reigns of government firm and secure political hegemony. The political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was close as much. It was due to such close relationship of the two that Shin was willing to throw himself the jaws of death in order to rescue King Taejo in crisis and peril in Mt. Palgongsan battle. Wang Geon mourned over Shin’s death in battle very much and commemorated. While entombing Shin courteously in Chuncheon and praying repose of Shin’s soul by building Jimyosa temple, he privileged the bereaved family. Moreover he did his utmost to commemorate Shin with a funeral in Palgwanhoe to praise Shin’s loyalty. Palgwanhoe in Goryeo dynasty was discontinued by King Seongjong and soon after reopened by King Hyeonjong. Also a ceremony to commemorate Shin’s loyalty in Palgwanhoe was restored together. Afterwards Naju Palgwanhoe was held and the ceremony to commemorate Shin in Palgwanhoe affected Gokseong community within the administrative control of Naju. Shin Sung-gyeom was born in Gokseong county. Therefore the achievements of Shin’s lifetime was more praised in Gokseong community and finally Shin Sung-gyeom was worshipped as a tutelar deity of castle in Gokseong county. While a feeling to commemorate Shin was spread over regions with Naju Palgwanhoe, Shin Sung-gyeom was situated as a deity of castle standing as a symbol of county in the end. As King Jeongjong ascend the throne, Seogyeong Palgwanhoe was reopened. The ceremony to commemorate Shin’s loyalty was also held in Seogyeong Palgwanhoe. In 1120 while watching the ceremony in Seogyeong Palgwanhoe King Yejong was impressed by Shin’s loyalty and write a poem to admire it. It was so-called a poem Doijang’ga. King Yejong visited Seogyeong (Western Capital) and did such action as he intended to warn his subjects against the rise of the Jurchen and remove an uneasiness about a matter of his successor to the throne. This was a certain kind of event implying a political significance that King Yejong requested his subjects to obey their king himself like Shin Sung-gyeom and also honor the Crown Prince, his young successor with one accord. In this way he expected an effect that king himself could lead the political situation stably much more and his heir could succeed to the throne without troub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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