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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기생들의 가야금 연주 활동과 교육사적 의의 -매일신보와 조선미인보감을 중심으로-

Gayageum Performanace Activities of Gisaengs in 1910s and its Significance in Educational History -Focusing on “Maeil Sinbo” and “Joseon Miin Bo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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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1910년대 기생들에 의해 전개되었던 가야금의 연주 활동을 "매일신보"와 "조선미인보감"을 재검토하여 그동안 누락 되거나 간과되었던 연주 활동과 교육사적 위치를 살펴본 연구이다. 연구 결과. 1910년대 남성과 동등하게 가야금 활동을 펼친 기생들은 기생조합과 권번에 소속되어 학습 선생으로부터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여성 연주자로 성장하였고, 레퍼토리 측면에서도 풍류, 병창, 산조 등으로 확장하는데 이바지하였다. 기생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가야금 풍류는 현금, 양금과 함께 <영산회상>을 병주하였고, 명칭도 지금의 줄풍류를 비롯하여 주현ㆍ음악 합주ㆍ합주 등의 갈래 명으로 지칭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곡명으로 사용되었다. 병창은 1910년대부터 여성들의 참여로 래파토리가 확대되는 양상을 띠었는데, 판소리의 눈대목과 남도잡가 등을 연주하였으며 대정권번과 한남권번ㆍ대구 조합ㆍ광주 조합ㆍ수원 조합 등 모두 다섯 기관에서 학습되었다. 산조는 1913년 9월 덕수궁에서 열린 고종탄신기념 연주회에 다동기생조합 소속 설경패가 참여하였으며, 한자명(漢字名)이 지금의 산조(散調)와 다르게 산조(酸調)로 표기되어 있었다. 또한 한성권번ㆍ대정권번ㆍ한남조합ㆍ대구조합에서 기예로 산조가 교육되었다. 이처럼 1910년대 기생들은 기생조합과 권번에서 익힌 기예를 통해 사멸 위기에 있었던 가야금 음악을 올곧게 지켜낸 계승자이자, 후대에 전승한 가교역할을 수행하였다. 결국. 1910년대 가야금 연주가 대중들로부터 선호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공교육기관이 아닌 사설 교육 기관이었던 조선정악전습소, 기생조합과 권번에서 명완벽, 함화진, 한규우, 김창조, 강태홍 등과 같은 명인들의 철저한 교육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Abstract

This research paper examines the performance activities of gayageum by gisaengs in the 1910s through a re-examination of “Maeil Sinbo” and “Joseon Miin Bogam” to explore their missing or overlooked performance activities and educational history. The research results demonstrated that gisaengs who practiced gayageum activities on an equal basis with men in the 1910s belonged to gwonbeons and unions, and grew as female performers through systemic curriculums from their teachers, and contributed to the expansion of the repertoire to pungryu, byeongchang, sanjo, and others. For gayageum pungryu, which was led by gisaengs, “Yeongsanhoesang” was performed in a duet with hyeongeum and yanggeum, and it was not only referred to by its current name “julpungryu” but also by its branch names juhyeon, musical ensemble, and ensemble. Further, it was around this time that full-fledged song names began to be used. Byeongchang had expanded its repertoire with the participation of women from the 1910s. Pansoris including “Nun dae mok” and “Namdojapga” were performed, which were educated at the following five institutions: Daejeong-Gwonbeon, Hannam-Gwonbeon, Daegu union, Gwangju union, and Suwon union. For sanjo, Seol Gyeongpae, who belonged to Dadong gisaeng union, participated in a birthday celebration concert for King Gojong held at Deoksugung Palace in September 1913. Its Chinese notation was sansjo (酸調) which is different from the current notation sanjo (散調). Additionally, sanjo was educated as an artistic skill at Hanseong-Gwonbeon, Daejeong-Gwonbeon, Hannam union, and Daegu union. With such artistic skills acquainted at the unions and gwonbeons, gisaengs acted as both inheritors who well-preserved gayageum musics and mediators to pass them down to later generations. Ultimately, the popularity of gayageum performances in the 1910s was due to thorough training of masters such as Myeong wanbyeok, Ham Hwajin, Han Gyuu, Kim Changjo, and Kang Taehong at Joseon Jngak Jeonseupso, unions, and gwonbeons, which were private rather than public educational institu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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