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직후 박열의 행적을 통해 본 재일한인사회의 로컬리티
Locality of Korean Community in Japan that Bak Ryeol Showed soon after the Lib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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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역사적인 어프로치를 통하여 박열의 해방직후 행적을 실증하고 그가 새로운 한일관계에서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파악하고 있다. 1945년 조국해방으로부터 1949년 박열이 남한에 귀국하기까지를 분석대상 시기로 하며 특히 그가 출옥하는1945년 10월부터 「민단」이 결성되는 1946년 10월까지의 1년 동안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 논문의 첫 번째 과제는 해방직후 한반도 국가건설 과정에서 재일한인 사회의 로컬리티(locality)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두 번째 과제는 해방직후 한일관계 변화에대한 박열의 대응을 검증하고 평가하는 일이다. 본문에서는 박열에 대한 기존의 평가들을 살펴보고, 한일관계와 관련이 깊은 사건을 정치범 사상범의 석방 문제, 재일한인 사회의 민족단체 문제, 한반도 신탁통치 문제, 본국귀환 문제로 나누어, 각각의 사건에 대해 박열이 각각 어떻게 관여했는지, 가능한 자료에 입각하여 실증하고 있다. 박열은 해방직후 재일한인 로컬리티를 대변하는 움직임을 보였고, 현실정치에 속박당하는 일이 없이 소신대로 민족의 독립을 추구하려고 했으며 인간으로서 신의와 정의를 지키려고 노력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박열을 운동가 혹은 정치지도자로서 평가하기보다는 지식인 혹은 사상가로서 평가해야 한다.
Abstract
This study adopts a historical approach to find Bak Ryeol’s activities as a national leader of Korean community in Japan, and to hold of his location on the new relation between Korea and Japan around 4 years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n peninsula. It especially reveals his words and deeds intensively during the period from the discharge from Akita Prison on October 1945 to inauguration of Head of Mindan (Korean Conservatives Organization) October 1946. The first object of this study is to make sure a locality of Korean community meeting the nationality tendencies of Korean society that Bak Ryeol also showed in his literatures. And the second object is to reveal how he dealt with Korean transformation such as freedom of political prisoners, organization of nationalistic groups, trusteeship of Korean peninsula, and repatriation to homeland referring to existing evaluations of his respondence. He, as a symbolic spokesman of locality of Korean community in Japan, tried to seek national independence and humane justice without restraints from real political circumstances. He should be recognized as an intellectual or a philosopher rather than an agitator or a political l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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