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419까지의 한국교회와 과거 청산 문제 : 의제 설정을 위한 시론
The Korean Protestant Churches and the Overcoming of the Past, 1945~1960 : Preliminary Discussions for Agenda Set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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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해방 이후 419까지의 한국 개신교교회를 다루는 이 글에서는 다음 두 가지를 과거 청산 의제의 설정을 위한 주요한 기준들로 삼았다. 첫째, 과거 청산이라는 문제상황이 과거 및 현재의 갈등과 불가피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갈등의 존재’가 과거 청산의 의제들을 설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특정한 쟁점 혹은 결정과 관련하여, 내부 혹은 외부로부터의 문제제기와 도전, 그리고 그로 인한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는가? 의제 설정을 위한 두 번째 기준은 ‘영향의 지속성’이었다. 주어진 시기의 특정한 쟁점 혹은 결정이 과연 그 후 한국 개신교를 특징짓는 지속적 효과를 발휘했는가? ‘갈등의 존재’와 ‘영향의 지속성’이라는 두 기준을 적용하면, 1945~1960년 사이 과거 청산의 잠정적인 의제들은 대략 다음의 일곱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 (1) 일제 잔재의 청산 실패와 그로 인한 후유증, (2) 반공주의, 그것의 비인간성과 폭력성 문제, (3) 친미주의와 종교적 종속성 문제, (4) 민족 분단에 대한 기여와 북한교회의 소멸 조장 문제, (5) 전쟁 및 평화에 대한 태도와 행동 문제, (6) 정교유착과 독재정권 지지 문제, (7) 분열주의, 특히 1950년대 말의 교파 분열.물론 이 다양한 의제 혹은 문제영역들은 상호연관되어 있고 또한 상호의존적이다. 특히 ‘반공주의’, ‘친미주의’, ‘정치권력에의 순응성’ 등은 일제시대 말엽에는 한국 개신교의 지배적인 특성으로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상태였다. 따라서 이런 특성들은 ‘변수’(variable)라기보다는 ‘상수’(constant)에 가까웠다고 말할 수 있고, 해방 후 한국 개신교 교회들의 역사적 선택을 중층적으로 결정지었다. 나아가 해방공간에서의 특정한 역사적 선택은 한국 개신교에 중요한 결과들을 낳았다. 이로 인해, (1) 한국 개신교가 냉전적 반공친미분단체제로 공고하게 편입되었다; (2) 개신교가 한국사회에서 특권적 사회세력으로 상승하게 되었다; (3) 종교적으로는, 지배적 종교로서의 입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의 결과, 교회는 이승만 체제와 운명을 같이하게 되었고, 정권이 지탱해준 지배적 종교의 입지도 함께 균열위축되었고, 국제질서의 변동을 포함하여 외적인 상황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 받을 수밖에 없는 취약성을 노출하게 되었다.
Abstract
The Korean Protestant Churches and the Overcoming of the Past, 1945~1960 : Preliminary Discussions for Agenda Sett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