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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인식과 대응 – 한국기독교연합회(NCC)의 활동을 중심으로

Korean Christianity's Perception of and Response to the May 16 C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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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5·16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첨예한 질문을 던진다. 5·16을 ‘쿠데타’로 볼지 아니면 ‘혁명’으로 평가할지에 따라서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눠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5·16을 둘러싼 평가의 차이는 한국 현대사, 더 나아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5·16은 한국 현대사의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5·16이 발생하자 가장 기민하게 대처한 건 NCC였다. NCC를 위시한 한국 기독교는 5·16이 독재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인지하고 있었지만, 5·16을 통해 반공 체제가 확립되고 부정부패가 사라지는 등 대대적인 사회개혁이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5·16을 지지한 이면에는 군부 세력의 인적 구성이 친기독교적이라는 점, 평소 ‘가톨릭 정권’으로 인식한 장면 정권에 대한 반발, 군부 세력이 강조한 인간개조론에 대한 공명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진보적 기독교 지식인들조차 군정 초기에 협력적인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5·16에 대한 기대는 몇 가지 일을 계기로 실망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한국 기독교는 군부 세력에게 집단 정체성의 핵심인 주일성수 문제를 크게 침해받았다고 여겼다. 더욱 큰 문제는 민정이양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애초에 한국 기독교가 5·16을 지지한 가장 큰 이유는 군정이 일시적으로 실시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1961년에서 1963년으로 넘어오면서 5·16에 대한 지지와 기대는 실망과 불신으로 바뀌어갔다. 이러한 입장 변화는 한국 기독교가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여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즉, ‘5·16’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인식과 대응은 ‘쿠데타’에 대한 협력이라는 간단한 문제로 치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Abstract

May 16 raises the sharpest question in Korean modern history. This is because the view of Korean modern history varies depending on whether May 16 is regarded as a coup or a revolution. This difference is related to the polarization of the evaluation of President Park Chung-hee. The difference in evaluation surrounding May 16 provides a decisive starting point for understanding Korean modern history and further Korean society. In this regard, May 16 is like the litmus test paper of Korean modern history. When May 16 occurred, it was the The National Christian Council(NCC) that responded most quickly. Korean Christianity, including the NCC, vaguely recognized that May 16 contained the possibility of dictatorship, but expected massive social reforms to take place, with anti-communist systems established and corruption disappearing through May 16. Behind the support of Korean Christianity on May 16, there was a resonance for the fact that the human composition of the military forces was pro-Christian, the opposition to the scene regime that was usually perceived as a Catholic regime, and the theory of human reformation emphasized by the military forces. For this reason, even progressive Christian intellectuals took a cooperative attitude in the early days of the military administration. However, expectations for May 16 led to disappointment with several things. Above all, Korean Christianity considered that the issue of Lord`s Day, the core of collective identity, was greatly violated by military forces. The bigger problem was the conflict over the transfer of civil government. The biggest reason why Korean Christianity initially supported May 16 was that it believed that the military government would be temporarily implemented. From 1961 to 1963, support and expectations for May 16 turned into disappointment and distrust. This change in position served as a factor for Korean Christianity to participate in the Movement against the Agreement between Korea and Japan. In other words, the perception and response of Korean Christianity to ‘May 16’ is difficult to dismiss as a simple problem of cooperation in ‘C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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