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당(錦塘) 이재복(李在福)의 불교 활동과 시대 인식
A Study on Lee Jae-bok’s Buddhist Activities and Perception of the Times of the Modern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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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금당 이재복은 1918년 5월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애 전반부는 출가와 교학 연찬의 시기였다. 15세인 1932년 3월 계룡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0월 계룡산 갑사에서 출가한 그는 강원의 전통적인 강학과 혜화전문학교에서 근대식 불교학을 통해 교학 연찬을 하였다. 이때 체계화된 불교 지식은 훗날 역경위원과 대중 설법의 토대가 되었다. 중반부는 1945년 8월 광복이 되자 대전으로 옮긴 후 지역불교 발전을 위해 헌신한 시기이다. 대전으로 내려온 그는 일본 사찰을 확보한 후 충청남도 불교종무원을 세웠다. 충남불교청년회를 비롯한 여러 신행 단체를 조직한 후 대중불교 활동을 하였다. 그런 노력으로 불교 활동이 미비하였던 대전에 발전의 토대를 세울 수 있었다. 후반부는 1970년 5월 이후 한국불교태고종 수행자로 대중불교 활동에 전념한 시기이다. 전통 강학과 불교학으로 다져진 실력으로 경전을 근거로 한 설법을 하였다. 그런 대중 활동과 더불어 여러 글을 통해 한국불교가 걸어온 길을 진단하고 또한 가야 할 방향을 명료하게 제시하였다. 특히 한국불교에서 많은 종파의 출현이 가져올 질적 저하의 문제, 계율에 벗어난 수행자의 행동, 그리고 불교계 교육기관의 부족을 거론하며 불교계의 인식 전환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삶을 살았던 이재복은 근, 현대에 걸쳐서 일제의 한국불교 통제를 경험하였고, 광복 후 현대사회에서는 급박하게 변화되고 다양한 종교가 경쟁하는 현실을 목격하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한국불교가 지켜야 할 가치와 가야 할 방향을 예단한 선지식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
Abstract
Lee Jae-bok(1918~1991) was born in Gongju, South Chungcheong Province in May 1918. After graduating from elementary school in March 1932, he became a monk at Gapsa Temple in Gyeryongsan Mountain in October. He received Buddhist education at Gangwon(Traditional Korean Buddhist educational institution) and Hyehwa Colleges(Dongguk University name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In Gangwon, he served as the publisher of a magazine and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Korean Buddhism education in Gangwon and the role of scholars. He was so passionate that he received an excellence award when he graduated from Hyehwa College in 1943. Immediately became a teacher at Gangwon in Seoul and trained younger students. In 1945, he organized the Chungnam Buddhist Youth Association in Daejeon and became its president. He led a spiritual practice group for a long time and worked to develop Daejeon Buddhism. In 1957, he published an article titled ‘The Direction of Korean Buddhism’s Propagation’, presenting his views on reform. Its content is consistent with modern reform ideas.In that respect, it can be said that it inherits that spirit. In addition, he worked to resolve the conflict between Korean Buddhism and publish the Korean Tripitaka. He taught Buddhism to the public through over 3,000 sermons. He preached the law thoroughly based on the scriptures. He clearly presented the problems of Korean Buddhism through several writings. First, so many Buddhist sects arose. Second, the number of Buddhist practitioners who violate the precepts has increased. Third, there is a lack of Buddhist educational institutions. Therefore In view of this, he can be evaluated as a pioneer who accurately diagnosed modern Korean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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