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도리사 승려 김경환의 독립운동
Kim Kyung-hwan's Independence Movement, a Buddhist Monk at Dorisa Temple(桃李寺) in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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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일제강점기 도리사 승려 김경환의 독립운동과 그 역사적 의미를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김경환은 경북 상주 출신으로 선산의 도리사에 출가하여, 승려 생활을 하던 중 도리사의 본사인 해인사에서 운영하던 지방학림에서 불교를 익혔다. 그는 3·1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될 때, 해인사 지방학림 승려들과 함께 1919년 3월 31일 해인사 3·1운동을 일으켜 3·1운동의 확산에 이바지하였다. 그는 복역을 마친 후 해인사로 다시 돌아가 승려 생활을 이어가던 중 중국 남만주에 기반을 둔 한족회의 독립운동 자금 모금 운동을 벌이기로 하고, 경상북도의 주요 사찰을 찾아다니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도리사 승려 김경환은 전민족적 항일운동인 3·1운동에 참여하고, 1920년대 초 독립전쟁노선으로 전환해 나간 독립운동가였다. 특히, 3·1운동에 이어 독립전쟁노선으로 전환해 나간 불교계 독립운동의 사례를 보여주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아울러 불교계의 독립운동이 국외로 나간 한국 독립운동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도리사 승려 김경환의 독립운동이 한국독립운동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 할 것이다.
Abstract
Kim Kyung-hwan, a native of Sangju, Gyeongsangbuk-do, went to Dorisa Temple in Seonsan(善山) and learned Buddhism in a local school forest operated by Haeinsa Temple(海印寺), the headquarters of Dorisa Temple, while living as a monk. When the March 1st Movement(3·1운동) spread throughout the country, he and the monks of the local school forest of Haeinsa organized the March 1st Movement on March 31, 1919, contributing to the spread of the March 1st Movement. After completion of Bok Station, he returned to the Hae-in-ju, who returned to the independent exercise fund fund fund fund fund fund fund fund fund fund fundraising campaign, and collect the main temple. After suffering from imprisonment, he served as the governor of Sudasa Temple from 1924 to 1931. As such, Kim Kyung-hwan, a Buddhist monk at Dorisa Temple in Japanese colonial era, was an independence activist who switched to the independence war route in the early 1920s through the participation of the March 1st Movement, a national anti-Japanese movement. In particular, it is remarkable that it showed the case of Buddhism-based independence movement that turned into independent war node. In addition, it is worth noting that the Buddhist independence movement is in line with the flow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outside the country. In this regard,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Dorisa monk Kim Kyung-hwan's independence movement is in line with the flow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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