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韠과 許筠의 交遊와 그 當代的 意味
Association between Kwon Pil and Heo Gyun and Its Historical Meanings
0
조회
0
다운로드
9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고는 權韠과 許筠의 교유 양상과 그 當代的 意味를 검토하는 데에 목표를 둔다. 先親 간의 교분에서 시작된 이들의 교유는 이후 인간적인 情誼를 나누는 사귐으로 이어져 갔다. 두 사람이 활동하던 조선 중기는 鮮初 이래 누적되어온 정치 사회적 모순이 급격하게 露呈되고 있던 시기다. 이들은 스스로 規範體系로부터 일탈하거나 규범체계의 부적응이 이전의 일탈지향을 강화시켰다는 경로상의 차이는 있지만, 둘 다 당대 主流로부터 일정하게 벗어나 있는 아웃사이더였다. 이 같은 지점에서 이들은 재야의 자유로운 공기를 호흡했으며 또 정치 현실을 바라보는 객관적 거리를 확보했다. 권필이 西人 人士의 의식을 견지하며 서인이 배척된 混濁한 세계에 맞서려 한 데 비해, 허균은 보다 자유롭고 진전된 의식 아래 모순을 야기하는 사회 구조가 변혁된 세계의 모습을 전망했다. 역사 인식의 면에서 당대의 첨단에 있던 두 사람의 接點과 그 差別的 面貌라 할 수 있는데 권필 시의 풍자정신, 허균 시의 사실적 묘사와 몇 편의 논설에 드러나는 민중에 대한 시선은 이러한 각각의 인식과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문학적 교유에 대해 살펴보면, 두 사람은 서로 창작자와 비평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상대 집안의 문집 간행, 서문 제작, 작품 선별 및 비평 등의 작업에도 밀접하게 관여했다. 다양한 문학적 교유는 이들을 정점으로 한 濟濟多士의 활동과 함께 穆陵盛世의 일면을 대변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들의 교유는 선조 중후반~광해군기에 盛唐詩가 창작과 비평의 기준으로 인식되어 가던 詩壇의 흐름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권필은 시 창작의 주안점이 妙解를 透得하는 데에 있었으며, 허균 역시 권필의 시는 學力의 확충에 의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닌, 妙悟를 透得한 경지의 시, 즉 盛唐詩의 정신을 제대로 구현한 것으로 보았다. 한편 이 무렵은 明末 文壇의 영향이 가시화되던 때다. 그런데 受容의 문제에 있어 둘 사이에 차이가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허균은 前後七子의 거의 모든 著作을 섭렵했고 또 재편집하는 데에 열중했다. 반면에 권필의 문집에는 명말 문단의 동향과 관련된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권필이 전란 중 明軍 장교와 교유한 사실이나 전후칠자를 비의한 허균의 「前五子詩」, 「後五子詩」에 대한 評語를 남긴 것을 볼 때, 명말 문단의 동향을 몰랐던 것 같지는 않다. 차후 정밀한 접근이 요구되는 문제이나 절친한 교유 인물 사이에 이 같은 차이가 있음을 볼 때, 16세기 말~17세기 초의 朝鮮文壇에는 전후칠자의 저작이 그간 알려진 것과 다르게 選擇的으로 수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앞으로 이 시기 작품 자체의 면밀한 분석과 수용과 관련한 文人群 설정에 따른 地形圖 작성과 함께 해명될 부분이다.
Abstract
The objective of the present study is to examine the pattern of association between Kwon Pil (1569-1612) and Heo Gyun (1569-1618) and its historical meanings. The two persons have drawn people’s attention as critics and poets representing the mid Chosun Dynasty. Their similar position as outsiders induced them to have free and individual consciousness and to share the thematic dimension with each other to some degree. Through the two persons and people who associated with them, we can identify the pattern of outside beings engendered through various paths different from the past. In addition, through literary association, they played the role of a meaningful critic to each other. We can see that they pinpointed the merits of each other’s poems and formalized them in the context of the history of poetry, and showed continuous interest in each other’s works through creation and criticism. Another characteristic to be mentioned is that they were involved in the publication of anthologies and the writing of forewords for each other with some understanding of the literary tradition of each other’s family. On the other hand, with regard to the influence and acceptance of literary trends in the late Ming Dynasty, which is one of keywords in understanding the history of literature in those days, we can find a difference between the two. The difference in accepting literary trends from the Ming Dynasty can be an important clue for explaining phenomena in the literary circle in those days. That is, the literary circle of Chosun in the late 16th century and the early 17th century did not accept widely the writings of the earlier seven masters and later seven masters of the Ming Dynasty, or accepted them selectively. This needs to be explained further through close examination of their works during this period, and making topographical maps according to the grouping of literati.
참고문헌 (39)
- 權擘, "習齋集", 진명문화사
- 權, "石洲集", 韓國文集叢刊, 75, 民族文化推進會
- 權, "震溟集" (1994), 진명문화사
- 金得臣, "柏谷集", 韓國文集叢刊, 104, 民族文化推進會
- 成渾, "牛溪集", 韓國文集叢刊, 43, 民族文化推進會
- 申欽, "象村稿", 韓國文集叢刊, 71, 民族文化推進會
- 梁慶遇, "霽湖集", 韓國文集叢刊, 73, 民族文化推進會
- 李光, "芝峰集", 韓國文集叢刊, 66, 民族文化推進會
- 李安訥, "東岳集", 韓國文集叢刊, 78, 民族文化推進會
- 李春英, "體素集", 韓國文集叢刊, 66, 民族文化推進會
- 鄭曄, "守夢集", 韓國文集叢刊, 66, 民族文化推進會
- 鄭澈, "松江集", 韓國文集叢刊, 46, 民族文化推進會
- 鄭弘溟, "畸巖集", 韓國文集叢刊, 87, 民族文化推進會
- 趙緯韓, "玄谷集", 韓國文集叢刊, 73, 民族文化推進會
- 許筠, "惺所覆藁", 韓國文集叢刊, 74, 民族文化推進會
- 許筠, "國朝詩刪", 아세아문화사
- 許穆, "記言", 韓國文集叢刊, 99, 民族文化推進會
- 許, "水色集", 韓國文集叢刊, 69, 民族文化推進會
- "국역조선왕조실록 cd-rom, 서울시스템(주)", ~
- 민족문화추진회, "韓國文集叢刊 解題", ~ (1999)
- 嚴羽, "滄浪詩話校釋" (1998), 人民文學出版社
- 강명관, "16세기 말 17세기 초 擬古文派의 수용과 秦漢古文派의 성립", 289~305면, 18, pp.289~305 (1995), 한국한문학회
- 구덕회, "宣祖代 후반(1594~1608) 政治體制의 재편과 政局의 動向", 한국사론, 20, pp.201~255 (1988), 서울대
- 김기회, "권석주의 연구", 석사, pp.1971
- 김창호, "權擘 詩 硏究 : 幽鬱의 삶과 獨白의 詩世界", 韓國漢文學硏究, 25, pp.43~77 (2000), 韓國漢文學會
- 김창호, "권필 거주지 문제의 再考", 한자한문교육, 17, pp.493~519 (2006),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 김창호, "成輅 詩世界의 硏究", 東方漢文學, 30, pp.261~284 (2006), 동방한문학회
- 문범두, "『석주 권필 문학의 연구』, 국학자료원. 41~51면", ~ (1996)
- 박영주, "허균 시에 투영된 사유와 정서의 특질", 고시가연구, 15, pp.167~194 (2005), 한국고시가문학회
- 심경호, "조선시대 漢文學과 詩經論" (1999), 일지사
- 안병학, "許筠의 文學論 硏究", 민족문화연구, 15, pp.179~215 (1980),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 안병학, "許筠의 詩世界와 自我意識 In: 한시연구", pp.311~332 (1997), 태학사
- 이동환, "石洲 詩人意識의 自由?抵抗性의 局面과 그 歷史的 意味 In: 문학작품에 나타난 서울의 형상", pp.65~80 (1994), 한샘출판사
- 이종찬, "許筠의 인간적 갈등과 南宮先生傳", 韓國漢文學硏究, 1, pp.43~64 (1976), 한국한문학회
- 정? 민, "목릉문단과 석주 권필", pp.27~248 (1999), 태학사
- 하미현, "許筠 詩論 形成에 關한 硏究", 석사, pp.2000
- 허경진, "허균 시 연구", pp.11~287 (1984), 평민사
- 허경진, "허균평전", pp.23~383 (2002), 돌베개
- 허권수, "권필의 풍자시에 대한 소고", 경상대논문집, 23, pp.51~61 (19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