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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 문학작품의 易學 차용 양상-申欽 주변인물을 중심으로-

A Study on literatures borrowing means of divination in early 17th Joseon(朝鮮) Dynasty-Centering arround ShinHeum(申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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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17세기 초반의 조선은 대내외적으로 극심한 혼란과 모순을 안고 있었다. 이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방편으로서 易學에의 관심이 증폭되고 역학 연구는 심화․확산되었다. 또한 光海朝의 많은 문인들은 잘못된 현실에 대응하는 방법으로서 몸을 숨기는 길을 택했고, 易은 구체적인 방도를 제공하는 길잡이였다. 申欽(1566~1628)은 방축과 유배기에 정치적인 실의를 맛보고 열악한 자연환경을 마주하고서도 운명에 순응하면서 생활의 터전을 일구었다. 주거공간이나 건물에 易의 의미를 투영하여 堂號를 붙여서, 어쩔 수 없이 발동하는 내면의 갈등과 이를 감내하는 마음의 원천을 易學에서 찾은 것이다. 아울러 그러한 과정을 글로 남겼는데, 이들 문학 작품은 자기위로 내지 자기수양의 내용을 담게 된다. 그런데 易이 담보하고 있는 암시와 중층성은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므로, 역학 차용 문학작품은 불의한 현실에 대한 강개한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던 문인들의 내면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현실의 고난을 易學을 통해서 극복하고 이를 글로 남겨 자기위로와 내면을 토로하는 현상은 비단 신흠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니었다. 申翊聖(1588~1644)은 부친의 뜻을 구체화하거나 대변하는 기문을 남겼고, 張維(1587~1638)는 신흠이 명시하지 않은 堂號의 의미를 易卦로 풀이하여 글로 적었다. 이처럼 당대에는 당호를 易의 의미로 해석하는 기문이 다수 창작되었는데, 역학을 차용한 堂號가 증가함에 따라 이를 기념한 글에 易學의 내용이 일반화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한문사대가로 일컬어지는 인물 가운데 신흠을 중심으로 하여 이식과 장유가 남긴 뛰어난 역학 차용 문학작품은 그러한 시대적 요건 속에서 창작되었다. 이는 조선후기 산문의 다양화된 한 양상을 드러낸다고 하겠으며, 앞으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할 바이다.

Abstract

Joseon(朝鮮) Dynasty in early 17th fells into many utter confusions by domestic and international issues. So many scholars took interests in the science of divination and The Book of Change(周易), continued, deepened, and spreaded their studies. Also the driven gentries selected their retirement places by divining, and they created literatures including such progresses and divining signs. When ShinHeum(申欽, 1566∼1628) was politically disappointed and straitened circumstances in Prince GwangHae(光海君)'s region, he constructed his residences by divining, and named that buildings. Also he created many literatures including divining signs through The Book of Change. The contents of such like works were self consolation, and exposing own discontented inside. ShinYigseong(申翊聖, 1588∼1644), a son of ShinHeum also created literatures including divining signs, he concretized consolation and speaked for his father's discontented inside. ChangYu(張維, 1587∼1638), a follower of ShinHeum also speaked for ShinHeum's insid, and consoled him. Specially ChangYu catched and explained unknown meaning of ShinHeum's buildings related The Book of Change. At that time, the more buildings borrowing means of divination increased, the more literatures borrowing means of divination created. And The Book of Change implied a part of life, influenced literatures in the latter Joseon(朝鮮)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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