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영과 반친영의 문화적 含意
Cultural implicative meaning of Chinyeong and Ban-Chin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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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 초 주자의 『가례(家禮)』가 도입된 이후 ‘혼례(昏禮)’의 절차적 수용을 둘러싸고 사대부들간 지난한 논의가 지속되어 왔다. 제반 논의대상 중 ‘혼례’ 친영의 행례가 가장 치열하였다. ‘친영’은 사대부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대표적인 의례서에 수록되었다. 그러나 여러 상황으로 인해 민간에서의 행례가 어려워지자 사대부들은 적어도 ‘외설스러운’ 혼속을 가졌다는 비난만은 면할 행례를 도출하고자 ‘반친영’을 도입하게 된다. 그간 선진 연구는 친영을 하지 않고 반친영을 했다는 주장과, 친영을 변형한 반친영과 ‘가관친영’의 시도가 있었을 뿐 고유 혼례가 끈질기게 존속했다는 주장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영과 반친영은 여전히 모호한 개념이 혼재하며 행례의 절차와 주도적 집행자, 그리고 행례 장소의 중요성 등이 충분히 검토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글은 이러한 한계에 관심을 두고 친영과 반친영의 구성요소와 행례 절차를 파악하여 전반적 이해를 도모하고, 행례 장소를 중심으로 행례 절차와 시기 간의 상관관계를 통해 행례적 특징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또한 위의 분석과정을 기반으로 ‘남귀여가’ 행례와 상호 비교 고찰하여 친영과 반친영의 진정성을 살펴보고, 혼인 의례의 변천과정을 통해 친영과 반친영의 문화적 의미를 파악해 보았다. 친영과 반친영의 공통점은 명일 현구고례를 치룬다는 점이고, 반친영과 남귀여가의 공통점은 신붓집에서의 본례 행례이다. 따라서 반친영은 친영과 현구고례 일정을, 남귀여가와 본례 장소를 공유하고 있다. 남귀여가는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의례준칙』과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실시한 『한국인의 일생의례』에서도 잔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초행과 초야는 대개 신붓집에서 치러졌으며 신부가 신랑집으로 들어가는 신행은 당일신행, 3일신행, 달묵이, 해묵이 등 다양하였다. 재행은 신행 후 3일만에 치러져 3일 도배기 등으로 불리었다. 이와 같이 혼례에 있어 속례는 조선 시기부터 현장조사 자료까지 유지되고 있는 속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Abstract
Since the introduction of Family Rites of Zhu Xi (Juja-Garye, 朱子家禮)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 fierce discussion concerning the procedural acceptance of Honrye (Marriage Ceremony) was emerged continuingly amongst Sadaebu (Noblemen, 士大夫). Particularly, the procession of Chinyeong in Honrye was the most fierce argument among the subject of debate. As Chinyeong was extensively accepted by Sadaebu, it was inscribed on the representative publication of Rites of Passage. However, a number of circumstances were emerged that make the procession difficult in the midst of common people, Sadaebu instituted Ban-Chinyeong to evade the criticism of Korean traditional marriage ceremony recognised obscenely by Chinese hierarchy. Previously, a couple of researches were carried out that only Ban-Chinyeong was conducted in Joseon Dynasty, while traditional marriage ceremony was continuingly subsisted in spite of attempts of Ban-Chinyeong that is the modification of Chinyeong, and Gaguan-Chinyeong. Nevertheless, the cardinal notion of Chinyeong and Ban-Chinyeong was still ambiguous; and the procedure, the leading executor, and the importance of procession space of Honrye were not examined thoroughly. Concerning the limitation of previous researches depicted above, this article will promote the general understanding of constituent and procedure in Chinyeong and Ban-Chinyeong, and will demonstrate the features of procession regarding the correlation between the time and procedure of procession in priority of the space. Moreover, on the basis of this analytic process, the authenticity of Chinyeong and Ban-Chinyeong will be examined by the mutual comparison with the procession of ‘Namgui-Yeoga (男歸女家)’. The similarity of Chinyeong and Ban-Chinyeong is to conduct Hyeongugorye (greeting parents-in-law) in the next day, and the similarity of Ban-Chinyeong and Namgui-Yeoga is to conduct the procession in the house of bride. Therefore, Chinyeong is sharing the time of Hyeongugorye with Ban-Chinyeong, while Namgui-Yeoga is sharing the space of procession with Ban-Chinyeong. The existence of Namgui-Yeoga can be found in 『Regulation of Ritual Rites(儀禮準則)』 enact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Joseon Chongdokbu), and in the research of 『Korean Rites of Passage』 conducted by th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Chohaeng and Choya tend to be held in Sinbut-jib (house of bride), and Sinhaeng in which the bride goes to the house of Sinrang (groom) was varied such as Dang-il Shinhaeng, Sam-il(three days) Shinhaeng, Dalmugi, and Haemugi. Jaehaeng was called as Sam-il Dobaegi as it was held three days after Shinhaeng. In this sense, general elements of Namgui-Yeoga in Honrye are deemed to hold attributes that retain continuingly from the period of Joseon Dynasty to the juncture of current fieldwork research of 『Korean Rites of Pas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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