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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의 馬韓 薯童(武康王) 神話 수용과 益山 彌勒寺

The study on Baekje's acceptance of Mahan ‘Seodong Mythology’ and Iksan Maitrey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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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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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역사적 인물이 신화 속의 인물로 부회되어 나타난다는 엘리아데의 ‘歷史的 人物의 神話化’라는 이론에 따라 薯童 說話가 담고 있는 이면의 역사와 사상을 복원하려고 시도하였다. 이에 따라 「舍利奉安記」에 나타나는 沙宅積德의 딸이라는 역사적 事實과 『三國遺事』의 서동 설화에 나타나는 善花公主를 동일한 사건의 인물에 대하여 다른 각도에서 표현된 各篇으로 보아, 두 기록의 내용을 모두 事實로 인정하여 서로 병렬되어 일어난 사건으로 보지 않았다. 다만, 두 기록에서 모두 왕과 왕비(사택적덕의 딸 혹은 선화공주)가 함께 발원하여 가람을 조영하고 있다는 공통점에 주목하여 이를 해석하고자 하였다. 중요한 것은 두 기록의 모순을 시간의 병렬에 따라 나열하여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事實과는 거리가 멀게 보일 수도 있는 서동 설화가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人文學的 검토인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益山 지방이 馬韓의 중심지였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 지역에서는 뛰어난 인물에 대한 기억이 ‘역사적 인물의 신화화’에 따라 마한을 세운 인물로 알려진 武康王과 관련된 영웅신화로 환원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으며, 百濟 武王이 바로 여기에 부회된 역사적 인물로 보았다. 그리고 이처럼 마한의 무강왕 신화가 백제 무왕의 서동 설화로 재탄생되어 나타난 것은, 무왕을 전후한 시기에 백제가 마한의 신화를 받아들여 그들을 포용하려 했던 점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益山 彌勒寺 역시 마한 토착신앙의 祭場에 백제 불교의 祭場을 세워 그들을 정신적으로 아우르려는 시도로 파악하였다.

Abstract

History is a narration of continual events and it is an ensemble of human experiences like political situations, economical and social structures, and cultural conditions. But human beings desire salvation to free themselves from history and want to erase the time through ‘no-temporal’(脫時間) structure as a prototype, because human beings face existential fears all the time. So Eliade(1907~1986) said that if people narrate history by embracing human nature like that, it is insufficient for them to arrange temporal events. So we have to dismantle the time and narrate history embracing the human nature. A process in which a historical figure becomes a part of mythology is a phenomenon brought about by reflection of the human nature. So this paper tried to reconstruct the history and the thought in the tale of Seodong(薯童). This paper regarded Sataek Jeok-Deok(沙宅積德)’s daughter as historical truth in 「Sari-bong-an-ki(舍利奉安記)」and thought the royal princess Seonwha in the tale of Seodong in 『Sam-kuk-yu-sa(三國遺事)』 as a character who was expressed in different views, so admitted the two stories are truth, but didn't regard them as parallel events. This paper merely paid attention to the common ground in which a king and a queen(Sataek Jeok-Deok’s daughter or the royal princess Seonwha) prayed for buddha together and built a temple, and tried to read the meanings through the context. So, this paper noticed Iksan(益山) was the center of Mahan(馬韓), and thought memories about a great person in the province was changed to a heroic mythology about the king Mukang(武康王), who was known as establisher of Mahan, through the process in which a historical figure becomes a part of mythology, and regarded the king Mu(武王) of Baekje(百濟) as a historical figure who became a part of mythology. According to this paper Mahan’s Mukang mythology was revived as the tale of Seodong(the king Mu), and the change was related to Baekje’s intention to embrace Mahan receiving its mythology. Iksan Maitreya Temple(彌勒寺) was also built to embrace Mahan mentally through the construction of Baekje’s buddhism temple in the sacred precincts of Mahan’s indigenous religion. Historical truth is that the king Mu, who was son of the king Pub(法王), built Maitreya Temple in Iksan with Sataek Jeok-Deok’s daughter. But in the tale, the king Mu, who was identified with the Mahan's hero king Mukang(son of a pond dragon(池龍)), built Maitreya Temple with the king Jinpyung(眞平王)’s daughter(royal princess Seonwha) of Shilla(新羅). This interpretation in the paper will be a hypothesis about understanding historical truth and tale’s logic at the sam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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